[Nov 12 Fri ]
잠이 살짝 부족하게 아침을 맞이 했다. 아침 10시에는 체크아웃을 해 줘야 하고, 9시 쯤에는 아침을 먹으러 가야 한다. 몇 일간의 여독을 풀기에는 턱 없이 모자랐던 시간이지만, 체념을 하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 한다.
아침 먹으러 식당으로 나갔더니, 뜨거운 물과 인스턴트커피가 전부이다. 앉아서 기다리면 아침을 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잠시 앉아서 기다리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용기를 내 주인 아저씨께 아침 식사에 대해 물어 보자, 커피나 차가 아침의 전부라고 한다. 빵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에… 순간 당황스럽다. 아침까지 주지 않는 조건에서, 140페소면 엄청 비싼 호스텔이다. 아~ 그리운 린다 비스타!! 물론 여행객이 많이 오지 않는 동네라 이 호스텔이 유일한 호스텔이라 배짱을 튕기는 거겠지만, 그래도 너무 한다. 호스텔에서 자는 걸 다시 한 번 생각 해 봐야겠다. 우리가 호스텔에서 자는 이유는 샤워 문제가 가장 큰데, 단지 샤워가 문제라면 캠핑장에서 자면서 샤워만 하고 호스텔에는 오지 않는 방향으로 돌려야겠다.
근처 빨래방에 빨래를 맡기고 왔다. 한 봉지 당 30페소씩을 받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18페소 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약 2 배정도나 비싼 셈이다. 그리고 한 봉지 당 옷이 10개 밖에 안 된다고 해서, 빨래감에서 몇 개의 옷은 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비싼 파타고니아 지역!! 그래도 우린 차에서 많은 걸 해결해서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빨래가 다 될때까지는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고, 어제 아주머니가 체크아웃 후에도 인터넷이나 주방은 써도 된다고 했으니 아침 겸 점심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에 먹을 밥도 미리 할 겸, 전기 밥솥으로 밥을 하는데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아줌마가 뭐라고 맘이 좀 상했다. 만약 그게 불편 했으면 미리 안내문이라도 적어 놓던지, 아님 주방을 쓰란 말을 하지 말던지 할 것이지. 아 역시 호스텔은 불편 해. 지금부터 완전 캠핑 모드로 바꿔야겠다.
아직도 빨래가 끝나려면 시간이 남아서 무조건 시간을 어딘가에서 보내긴 해야 하는데… 호스텔에 앉아 있긴 아줌마 눈치 보이고, 차라리 차 안에 앉아서 기다리는 편이 날 것 같았다. 돈은 돈대로 쓰고, 마음은 불편할대로 불편하고, 차라리 몸은 불편해도 차에서 자는 게 제일로 속 편하다. 역시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마을을 나가는 길, 주유소에 있는 ATM 에서 돈을 찾으려는데, 터치스크린의 엉뚱한 것이 계속 눌려서 계좌 확인비 명목으로 4페소만 나갔다. ㅠㅜ 그 돈이면 계란 6개 살 수 있는데… 팬더가 계속 계속 미안해 했다.
<날씨 운이 따라 주는 오늘...기대가 된다.>
<20대 후반을...... 이렇게 보냅니다.>
조금 더 달려서 몬떼 레온 국립공원입구로 들어 간다. 헷갈리게 입구가 두 군데 인데, 남쪽에서 올라갈 때 기준으로, 처음 길이 진짜 공원으로 들어 가는 길, 두 번째 길이 몬떼 레온 국립공원 방문자센터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처음 길을 보지 못하고 바로 방문자 센터로 갔는데, 알고 보니 공원을 들어가기 전에 무조건 방문자센터에 들러서 신고를 하고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도 최신식으로 깔끔하고, 방문자 센터도 아담하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더 좋은 건, 무료 국립공원이라는 점! 다른 곳은 입장료를 받는 데 반해 이 곳은 입장료도 없고, 지도와 브로셔도 제공 하고, 친절한 설명까지 해 준다. 우와~ 사람들이 잘 오는 유명한 국립공원이 아니라 그런 지, 모든 방문객에게 수퍼친절한 이 곳. 감격스러울 정도다.
우린 왔던 길을 되 돌아서 비포장인 첫 번째 길로 들어 선다. 이제부터 국립공원 시작! 핑기네라(펭귄들이 사는 곳)는 방문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곳부터 가기로 했다. 해가 지면 푸마가 자주 출몰하기에, 방문 시간을 제한 해 둔 것 같다. 곳곳에는 푸마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에 대해 적혀 있었다. 절대 뒤를 보이지 않기,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 절대로 뛰거나 쫓아가지 않기, 어린아이는 꼭 어른 가까이 붙어 있기 등등등 약 2km 의 산책로인 이 곳을 왕복하면 4km, 펭귄 구경까지 합치면 약 1시간 반~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이다.
<귀여운 주차구역. 인포 센터 앞.>
<비포장 길인지라 미리미리 공기압을 조절해 둡니다.>
<실제 공원입구. 인포센터는 왼쪽으로 6km 더 가야함>
산책로를 걸어 가던 중, 스컹크를 만났는데 만화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우리도 모르게 하늘 끝까지 흥분을 했다. 살금 살금 다가가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눈치를 채고 나무 밑둥지에 파 놓은 굴로 쏙 숨어 버렸다. 아쉽다. 그래도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게 돼서 신난다. 구아나코는 이제 지겨울 정도지만 희귀 동물인 스컹크를 만나게 되다니 ㅋㅋㅋ 반 정도 걸어 갔을 때 신기한 것이 하나 나온다. 쓰레기통같이 생겼지만 쓰레기통도 아니고, 상자 위에는 스페인어로 "이것이 무엇처럼 보이나요?"라고 적혀 있어서, 열어 보니 예상치 못한 방명록이 나온다. 혹시나 하고 한글을 찾아 보니, 3월 달에 우리 보다 먼저 다녀간 분이 계셨다. 반가운 한글~ 우리도 짧게 우리의 흔적을 남기고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스컹크닷~!!!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으나...이 놈 참 빠르다. >
< 이것이 바로 그것~!>
<방명록 함이었습니다. 비가 와도 젖지 않게 비닐로 포장. 볼펜도 있답니다.>
<다음은 누가 이 글을 보게 될지.....>
거의 다 왔는지, 펭귄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 한다. 반가운 펭귄아~~~ ^^ 3번째 방문하는 펭귄 서식지인데 같은 종류의 펭귄을 보지만 느낌이 다 다르다. 처음 방문한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에선 펭귄 수가 얼마 없어서 아쉬웠다면, 우수아이아의 펭귄 서식지는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짧게 봐서 아쉬웠었다. 하지만 이 곳은 정말 펭귄의 천국!! 펭귄들이 여기 저기 둥지를 틀고, 그 둥지들을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수적인 면에서도 아르헨티나의 5번째로 큰 서식지라고 하는데, 몇 만마리의 펭귄들이 한 장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걸어 가는 길에 길 가에 놓인 펭귄 시체를 봤다. 순간 몸이 움찔 했지만, 워낙 이 국립공원은 방문객도 없고 하니 자연 그대로 방치 된 것이다. 생명의 흐름 상 태어나고,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우리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한다. 하지만 똑 바로 쳐다 볼 수 없는 건 왜인지…
트레일을 따라 지나가는 내내 펭귄들이 둥지를 튼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진짜 떼거지는 따로 있었다. 해안절벽 밑으로 해안가가 있었는데, 그 해안가에는 까만 수박씨처럼 다닥 다닥 서 있는 펭귄들이 있었다. 우~ 와~ 한 눈에 봐도 굉장한 숫자. 저렇게 많은 펭귄은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꼭 우리나라 여름의 해운대 처럼 펭귄들이 있으니까, 참 이색적이다. 펭귄들은 부부가 교대로 한 마리는 알을 지키고, 한 마리는 사냥을 해 오니 절반의 펭귄이 둥지에, 또 다른 절반이 해안가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둥지는 흩어져 있지만, 해안가에선 펭귄들이 모여 있으니 숫자가 더 많아 보인다. 우리도 밑으로 내려 가 보고 싶은데, 밑으로 내려 갈 수는 없었다. 길도 없을 뿐더러, 내려 가지 말라고 피켓도 세워 놓았는데 내려 가는 건 양심에 찔렸다. 우리가 이 곳에 오는 손님이지, 주인은 펭귄들이니까.
밑으로 내려 가지 않아도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닷가도 그림같이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숨막히 듯 딱 떨어지는 해안 절벽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아치 형으로 파도에 깎인 기묘한 바위 형태, 하늘에서 바쁘게 돌아 다니는 바닷새들, 그리고 이 풍경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펭귄까지. 그리고 바다 냄새를 우리한테까지 실어다 주는 바람, 바다 맛이 나는 공기까지. 너무 특별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가 지금 서 있다.
<사자 모양의 바위. 스핑크스 닮았죠?? 해안의 작은 점을은.?? >
<오른쪽을 봅니다. 정말........멋진 장면이 나왔습니다. 하얀 점은 팽귄들이라는데 경악~!!>
<이렇게 말입니다.>
< 저 멀리 파도에 침식된 바위 굴도 있답니다. 이 지역 호텔 벽에서 많이 보이던 사진이었는데....^^;>
<하늘의 갈매기를 경계하면서 알을 지키는 팽귄군~>
<가까이 가니 목을 비틀면서 날 경계했답니다...난 친군데.... ㅠㅠ>
<멀리 보이는 사자바위쪽으로 이동할께요~>
핑기네라(펭귄 서식지)를 지나, 이번엔 사자머리 바위로 가 본다. 신기하게도 사자머리 바위에는 바다 사자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해안가 낭떠러지 모양이 사자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 곳 국립공원 이름도 몬떼레온이 된 것이다.
가는 길, 고운 입자의 비포장이라 승차감은 좋았지만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진흙으로 변해 버릴 것 같다. 안내 브로셔에 보니, 역시나 비가 오면 이 곳은 출입금지라고 한다. 약 400m의 트레일을 걸어 가면서 보는 주변 경관도 독특하고 양 쪽으로 바다가 탁 트여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체감온도는 거센 바람 때문에 시원하다 못해 춥다. 우리에겐 살 떨리는 바람이 바다 사자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지, 한 치의 요동도 없이 잠을 자고 있는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스페인어로는 바다 사자를 '로보 마리노' 라고 하는데, 번역 하자면 '바다의 늑대' 인데, 늑대가 바다에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좀 웃긴다.
<이렇게 한적한 곳인데도 트레일은 환상적입니다.>
<사자바위 아래에서 쉬고 있는 바다 사자들..엄청 많네요.>
<왕팬더 점프는 이정도???>
<토끼도 오늘을 용썼습니다.>
<토끼와 팬더>
사자머리 바위를 지나 우린 새들의 섬으로 간다. 몇 년 전, 큰 파도로 해안 절벽 일부가 붕괴되었지만, 여전히 동물들의 보금자리로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섬 위에 앉아 있는 새들도 한 가득, 하늘을 메우고 있는 새들도 한 가득. 한 가지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종류의 새들이 엉켜서 제 멋대로이지만 그 누구도 부딪히지 않는 멋진 비행을 선 보이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바닷가쪽에 부는 강한 바람 때문에 안전상 입구를 막아 놓았다. 우린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출입금지 선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워낙에 한가한 국립공원이라 우리가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자이기도 하고, 순찰도 잘 돌지 않는 곳이라 용기가 생겼다. 조금만 더 안 쪽으로 들어가도 더 가까워지는 새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 보았다. 해가 질 무렵이라, 석양과 함께 자유 비행을 하는 새들의 모습에 가슴 뭉클, 감동스러웠다.
<헉.....저 아래에 있으면 똥 폭탄이라도 맞을 것 같단 말야~??>
새들의 섬을 지나, 이 국립공원의 마지막 포인트인 해변가로 가 본다. 물이 빠지면 붉은 색 모래가 나오는 이 곳은 가장 안 쪽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다. 낚시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도 일찌감치 낚시대를 하나 샀으면 여기 저기 쓸 데가 많았을 텐데… 지금 사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해변에 도착하니, 해도 거의 다 졌고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정도다. 오늘 하루, 해변가에서 자고 싶지만… 우리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인. '차에서 자는 것 금지' 라는 사인이 눈에 확 들어 온다. 이 국립공원에서 자려면 단 한 군데 정해진 곳에서 캠핑을 해야 하는데, 요금이 꽤 비싸다. 로컬/ 내국인/ 외국인 으로 3중 차별 요금이 적용되는데, 우린 외국인에 들어가 캠핑 주제에 1인당 60페소로 비싸다.
결국, 왔던 비포장 길을 다시 달려 밖으로 나오니 밤 10시.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서 위도가 높아져 해 지는 시간이 길어져서, 낮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참 좋다.
늦은 시간이라 난 저녁을 안 먹고 바로 자려고 했으나, 팬더는 맛있는 것 만들어 먹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며 혼자라도 뭘 해 먹겠다 한다. 언제는 음식 만드는 시간이 아깝다고 했으면서… 여행하는 동안 참 변했다. 박팬더!!
으릉이 캠핑카 모드로 차 정렬을 하고 나서, 고구마 튀김, 그리고 볶음밥을 해 먹고는 즐겁게 심슨 - 만화영화 시청을 마치고는… 오늘 하루 끝! 역시 몸은 조금 불편해도 마음 편하게 제일이라고 오늘 절실하게 느낀 하루다. 으릉이 안에서 자는 우리 몸은 조금 불편할지라도 마음은 누구 보다도 편하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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