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늦게까지 놀다 잤으니 10시는 족히 넘어서 잠이 깼다. 토끼와 팬더가 눈 비비고 일어나니, 어제 만난 분들은 이미 나갈 준비를 말끔히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인사를 나누고 오늘 일정을 물으니 우리 어제 일정처럼 보테로 박물관과 황금 박물관을 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럼 우린 조금 게으름 피우고 있을테니 그 분들 보테로 박물관 다녀오고 나면 그 때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계속 나간다 나간다 말만 하면서 안 나간다. ?.? 알고 보니, 어제 같이 왔던 다른 남자분 한 분을 기다리는 데 샤워하러 가서 아직 안 나온다고 한다. 들어간 지 30분이 넘었는데도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 걸 보면, 혹시 때 미는 것이 아닐까를 가볍게 추측하고 계셨다.
우린 지금 아침 먹을 참이어서 혹시 아침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고 제안 하니 언니 한 분은 괜찮다고 거절 하시는데, 오빠 한 분은 거절한 누나를 타박한다. ㅋㅋ 그래서 커피를 내리고 계란과 빵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했더니 두 분 다 너무 감격해 하신다. 작은 것에 감격해 하는 사람들. 귀엽다.
언니의 이름은 김연희. 나이는 36살이라고 하나 너무 어려 보여 깜짝 놀랐다. 이름도 예쁘고, 동안이기까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악세서리를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 밖엔 아는 게 없다. 그리고 언니와 동행을 하는 오빠의 이름은 최성욱. 나이는 30으로 그 둘은 몇 년전 남미여행 그룹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되어 같이 여행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 둘만 오려고 했던 건 아니고 다른 일행들도 많았는데 날짜가 가까워 지자 이런 저런 이유로 다 빠지고 둘만 남아 그냥 둘이 왔다고 한다. 연희언니와 성욱오빠. 둘 다 이름이 맘에 든다. 그냥 사소한 이유로 이 둘이 맘에 든다.
한참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를 할 무렵, 오늘의 지각생 태경이가 등장한다. 나이는 나랑 동갑인데 미국을 스쿠터로 여행하고 콜롬비아 여행을 왔다 한다. 샤워를 길~게 하는 특징이 있다. 스쿠터로 여행하려면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 것 같다.
이왕 늦은 김에 우리도 같이 나가 모두가 안 가본 경찰박물관을 함께 구경하고 셋은 내일 보테로와 황금박물관을 들리기로 했다. 거리에 나서자마자 셋은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어 댄다. 신상여행자들과 함께라 우리도 기분이 발랄해 진다. 장기여행자들 중엔 매너리즘과 귀차니즘에 빠져 뭘 봐도 그저 그런 반응인데 신상여행자들은 작은 것에도 신기해 하니 우리까지 덩달아 기분 좋아 진다. 우린 어제 하루 먼저 왔다고 익숙한 길을 따라서 볼리바르 광장을 안내 해 준다. 오늘은 5명이 함께 다니기로 해서 왠지 든든한 맘에 DSLR을 꺼내 들고 왔다. 어제 똑딱이로만 사진 찍다보니 답답해서 사진 찍을 맛이 안 났는데 오늘은 카메라를 꺼내 들고 와서 기분이 좋다.
<DSLR 화질이 다르네요..어제와는 사뭇 다른 이 느낌??>
경찰박물관도 볼리바르광장에서 3분도 안되는 거리로 무척 가까웠다. 이곳도 입장은 무료, 영어와 스페인어 가이드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린 영어가이드를 받기로 하고 10분쯤 기다린 뒤에 들어갔다.
앳되고 순박한 얼굴의 청년이 우리를 향해 걸어 온다. 경찰복을 입은걸 보면 경찰인것 같은데 자기가 우리의 가이드라고 한다. 가이드는 콜롬비아의 유명한 마약왕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에 대해 아는지 물어 본다. 사실 난 그 이름을 처음 들어봤고, 나머지도 나랑 비슷한 것 같다. 가이드는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체포할 당시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엄청나게 많은 총탄을 맞고 메데진에서 그대로 숨졌다고 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닥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마약왕으로 불리며 엄청나게 뒷돈을 벌지만 국회의원으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겨왔기 때문이란다. 나름 우리나라의 홍길동처럼 그렇게 번 돈으로 서민들에게 일부 지원을 했고 옷도 항상 수수하게 입고 다녀서 서민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박물관 내부에는 파불로 에스코바르의 전단지도 아직 그대로 붙어 있고, 생전에 사용하던 권총, 마지막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 방에 있던 가구, 오토바이까지 그대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예전 수감자들을 태우던 마차>
하루가 행복하고 싶다면 술을 마시고.
한달이 행복하고 싶다면 결혼을 하고
평생 행복하고 싶다면 경찰이 되어라!!
가이드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랍니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용하던 책상을 경찰이 발견했지만 처음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비밀을 풀어 내 수천 만 달러를 이 책상에서 찾아 냈다고 한다. 과연 어디에 숨겼을까? 우린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고 책상을 들고 난리를 쳐도 비밀의 장소를 못 찾겠다. 가이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짜잔~ 하고 비밀의 장소를 보여준다. 책상을 교묘하게 밀자 나타났다. 저 곳에서 미화 백불짜리로 몇 뭉치나 발견되었다고 하니 … @.@
<비밀은 바로 분리되는 윗 판>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어 그들의 수하였던 사람들까지 다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콜롬비아판 '경찰청 사람들'을 시청하고 있는 듯한 기분. 약 한시간쯤 마약전쟁에 대한 설명을 듣다 살짝 지쳐버린다. 의자라도 주고 설명해주면 좋을텐데 계속 한 자리에 서서 마약전쟁 이야기만 들으니, 아무튼 콜롬비아-마약은 아직도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건 톡톡히 알겠다.
드디어 자리를 옮겨 야외로 나간다. 야외에는 큰 벽화가 두 방면으로 그려져 있고, 왼쪽으로는 콜롬비아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콜롬비아의 국기의 뜻에 대해 물어보니, 빨간색은 지금까지 흘린 피, 파란색은 바다, 노란색은 승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진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빨간색은 용기, 관용, 희생, 파란색은 부귀, 충성, 경계, 노란색은 부, 주권, 정의를 나타낸단다. 그땐 그냥 고개를 끄덕 였지만, 알아보니 우리한테 이상한 걸 가르쳤다. 어쩐지 파란색이 바다를 상징한다 했을 때 조금 이상하다 생각은 했다. -_-
점점 지쳐가는 우리. 똑바로 서 있기가 다리가 너무 아프다. 그런데 태경이 혼자 궁금한 게 뭐 그리 많은지 질문이 산더미 같다. "태경아… 제발… ㅠㅜ 질문 좀 그만해… " 라는 말 속으로 삼켰다. 야외에서도 한 자리에서 그대로 10분쯤 서 있다 드디어 2층으로 간다. 아싸~ 2층에는 지금까지 경찰총장을 지냈던 분들의 초상화가 짜르륵~ 걸려 있는 곳이었는데, 도 1대 총장부터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려고 한다. 헉………….. "제발 설명 좀 그만 해!!!!!!!!!!" 이 말도 속으로 삼켰다. 역대 경찰총장에, 역대 경찰대학총장까지 설명을 다 하고 나서야 다음 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휴~ 들어올 땐 맘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는 말이 이 말이구나.
다음 방에는 각국의 경찰복을 수집 해 전시하고 있었다.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 베네쥬엘라 등등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경찰복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경찰복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도 보게 된다면 참 반가울텐데… 아쉽~ 그리고는 각국의 경찰 모자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써봐도 된다고 허락해 줘서 한 장 씩 사진도 기념으로 남겼다. 찰 ~ 칵~ 이렇게 사진 찍을 때랑 아까 파블로 에스코바르 책상의 비밀의 공간 찾을 때가 가장 재밌었다. ^^* 그런데 꼭 이런 시간들은 짧다. 다른 모자도 한 번 더 써보고 싶었는데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한다. ㅠㅜ 갔더니 경찰박물관의 총책임자를 만나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헉… 그럼 또 시간이 늘어나는데… 우리는 불안 불안 떠는데, 잠시 후 아쉬운 얼굴로 돌아 와 지금 바쁘셔서 불가능하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히유~~~ 다행이다. 우리는 활짝 웃으며 괜찮다고 하자, 다음 방으로 가자 한다. 응 이게 끝이 아니었어?
<배경의 별을 순직한 경찰을 의미한다>
오늘 경찰박물관의 마지막 코스인 옥상으로 올라 왔다. 탁 트인 전경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 약 두 시간 가량 건물 안에 갇혀 있던 마음이 자유로워 지는 것 같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볼리바르 광장과 대통령궁, 그리고 사람들까지. 위에서 내려다 보는 건 색다른 기분이다. 그들은 나를 못보지만 나는 그들을 볼 수 있다는 특별함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견학 코스가 끝났으니 가벼운 잡담도 하며 바람도 즐기며 즐겁다.
<오늘의 만담 가이드. 멋졌어요!!>
가이드 청년은 지금 의무경찰로 일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콜롬비아에서는 1년 동안 경찰 복무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경찰박물관 가이드로 일하는 중이라 한다. 옆에서 남자들은 '오~ 편한 보직 받았네' 라며 한 소리씩 거든다. 지금 이제 일 한지 3개월 됐는데 아직도 9개월이나 남았다고 찡찡 된다. 옆에서 태경이는 한국 남자들은 2년씩 가야 된다고 너넨 편한거라고 하는데, 암튼 이런 이야기의 주제에 목소리 커지는 한국 남자들. 귀엽다 ㅋㅋㅋㅋㅋ
다음 방에는 경찰들의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옛 것 처럼 보이는 물건부터 현재 사용되는 총까지~ 난 그다지 무기에 관심이 없어서 보는 등 마는 등 했지만 군대 다녀오신 남자분들은 총에 관심을 보인다. ㅋㅋㅋ 갑자기 가이드는 수갑을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 지 아냐고 물어본다. 수갑? 모르는데… 능글 하게 웃으며 "Esposas" 라고 대답한다. 응? 수갑이 에스포사라고? 내가 어이 없다는 듯 웃자,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한다. 에스포사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Wife, 우리나라 말로는 부인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수갑이랑 부인이 같은 단어라니… 웃겨 암튼.
두 시간이 넘도록 우리 가이드를 하면서 세세한 것 까지 다 설명해 주려고 한 가이드 청년. 처음엔 지겨워 했지만, 이 시간들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콜롬비아에 대해 한층 더 알게 해 준 유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문 밖까지 직접 배웅해 주며 기념품인 탁상달력까지 하나하나 챙겨준다. 언제든지 집처럼 생각하고 놀러 오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더 고맙다. 잊지 못할 거다. 콜롬비아 경찰 박물관!!
볼리바르광장에선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레게머리에 레게옷을 입고 레게음악을 선 보이고 있었다. 우린 가볍게 패~스 하려 했지만 세 분은 관심을 갖고 지켜 본다. 그 사이 우린 어제 봤던 체스 할아버지 - 아가씨 의 배틀이나 관전. 역시나 할아버지의 압승. 팬더가 할아버지와 한 번 붙어보고 싶다고 하는데 낄 틈이 없이 계속 경기가 진행 된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점심 생각이 없는 데, 커피나 한 잔 마시러 가자고 제안 했더니 모두 좋다고 한다. 우린 어제 발견한 1+1 행사 커피숍으로. 연희언니와 성욱오빠가 커피와 케잌을 사 줬다. 어제 짜장밥에 대한 보답이라 하면서. ㅋㅋ 우린 커피숍에서 어젯 밤 못 나눴던 대화의 장? 을 마구 펼쳤다. 태경이의 위험천만한 미국여행 스토리도 듣고~ 우리의 여행 얘기도, 언니오빠의 몇 년 전 다녀온 남미여행 얘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 보니 어느 새 시간은 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ㅋ
쓔~~~슝~~~~
돌아가는 길의 길거리 소시지가 맛나게 보인다. 우린 하나씩 먹었다가 일초만에 퉤~ 뱉었다. 비린내도 심하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맛. 돈 버렸다. 하나에 2천 페소나 했는데. 쳇~ 원래 음식을 잘 버리지 않는 우리라 억지로 몇 입 먹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쓰레기통에 기증했다. '''
태양여관으로 돌아가 팬더는 볶음밥 요리를 하고, 우리는 블로그 사진을 보여주며 또 수다에 심취했다. 팬더가 요리를 끝냈을 때 우리는 쪼르르 달려가 같이 밥을 먹고 또 수다를 떤다. 대체 이 끝도 없는 이야기들. 대체 어디서들 나오는지 이야기가 끊길 틈이 없다.
어제 들은 바로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차량을 통제하고 볼리바르 광장 쪽부터 Carerra 7 에 노점상들이 나와 맛있는 음식과 물건들을 파는 게 볼만하다고 한다. 우리는 기대를 갖고 나갔으나 분위기만 살벌하고 무섭게 들려 오는 뻥뻥 소리, 숨 막히게 도주하는 사람과 쫓는 사람이 혼잡한 이 거리가 또 다시 무서워졌다. 해가 지기 무섭게 급속도로 부랑자가 장악하는 어둠의 도시. 우리는 얼른 빠져 나와 다시 호스텔로 돌아 가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고타에선 해 지면 안 돌아다니는 게 상책이다.
다시 호스텔에 돌아와, 오는 길에 사 온 맥주와 PONY를 놓고 간소한 술자리를 갖는다. 다른 사람들은 콜롬비아의 대표 맥주 AGUILA(독수리), 나는 알코올 없는 포니를 놓고 건~~배~~.
그 날 우리의 수다는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일 얘기, 사랑 얘기, 인생 얘기, 여행 얘기 등등
PS. 태경이를 줄담배 피게 한 '나쁜남자' 오해 사건. 미안.
PS2. 전직 기자 연희언니의 연예인 X파일로 우리를 잠 못 들게 한 수 많은 이야기들. 그 날 언니의 명언은 "태경씨는 이해 못 할 꺼에요", 갑자기 자다 일어 난 성욱오빠는 " 쟤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야" . 순간 나쁜 남자에서 순진남으로 바뀐 태경이는 "저도 이제 27이에요." 라 발끈했던 도미토리를 장악한 우리들의 수다.
오늘은 새로운 동행을 만났습니다.
<미국 스쿠터 횡단의 주인공 태경이>
<묘한 유머 감각을 소유하고 한국 유통계의 큰 손이 될 성욱이 형>
<배테랑 잡지사 기사이며 소설가가 꿈인 연희 누나>
<언제나 팬더 옆에서 웃겨주는 깜찍 토끼 ㅋㅋㅋㅋ>
----제 사진 (팬더)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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