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팬더 강도에게 공격 당하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근육이 아직도 뻐근함을 느낀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1층 식탁에는 어김 없이 아름다운 아침상이 준비되어 있다. '아침식사 - 현지 가이드 - 다양한 엔터테이먼트 - 각종주류제공 - 편안한 잠자리와 샤워' 까지. 정말 뭐 하나도 빠지지 않는 럭셔리 최고급 카우치서핑이다. 운이 엄청 좋은 우리들 . ^^V
오늘의 순서는 큰 스태디움에 가서 콘서트 관람이다. 그런데 그 콘서트장 입장이 생각보다 꽤 비싸다. 가격은 2인에 57,000페소(약 34,200원). 그래도 평생에 한 번 오는 카니발이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생각에 선뜻 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한나 아줌마, 그리고 주인집 커플 모두 안 가고 집에 있는다고 한다. 길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주인집 커플은 우리를 스테디움까지 라이드를 해줬다. 그리고 예약도 주인아저씨 이름으로 했기 때문에 아저씨가 직접 가서 티켓 수령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테디움 근처는 통제 땜에 차가 들어갈 수 없었고 근처에 주차를 해 놓고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스테디움 입구 약 30미터 전부터 각종 기념품 상과 구경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입구에는 암표상들과 티켓을 구매하려는 사람, 줄을 서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어디가 줄인지도 모르게 서로가 엉켜 있었다. 미리 예매한 사람들을 위해 따라 핫라인이 있다고 듣고 따로 예매비까지 지불하며 이렇게 왔건만 지금와서 보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이 와중에 난 갑자기 급성복통에 시달린다.
"아… 아아…. 아….. "
얼굴은 백짓장으로 변하고 마리아에게(주인 아줌마)급히 화장실을 수소문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이 곳 어디에도 공중화장실은 없었다. 그러다 영세업자가 운영하는 개인 화장실을 찾고 그 곳으로 뛰어 가려는 순간, 마리아가 내 어깨를 붙잡고 묻는다.
"이 화장실 시설이 굉장히 안 좋은데, 괜찮겠어?"
지금 급해 죽겠는데 시설이 좋고 안 좋고가 문제겠는가… 무조건 가야지. 난 애절한 눈빛과 함께 강하게 한 번 끄덕이고는 관리인에게 천페소(약 600원)를 들이밀자 두루말이 휴지 4칸을 떼어 준다. 내가 조금만 더 줄 수 없냐고 묻자 1 칸을 더 떼어 주는 저 인심.
화장실에 들어 가자마자, 마리아가 내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화장실 변기는 빈 페인트 통이 전부 였고, 사실 반쯤은 이미 차 있었다. 그 안에 알아서(?) 잘 해결 해야 했다. 그리고 안과 바깥을 나누는 건 단지 얇은 커튼 하나.
무사히, 화장실을 다녀온 뒤 우리는 2인 1조로 나누어 줄 나눠 서기 책략을 시행한다. 집주인 커플은 예매한 표를 수령해야 하기 때문에 그 쪽 줄을, 우리는 입장 줄에 줄을 서서 집주인 커플이 올 때가지 기다렸다 표를 가지고 입장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생각보다 일찍 우리차례가 다가 왔고, 한 쪽으로 비켜서서 그들이 올 때까지 또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면 신기한 광경을 목격 할 수 있었다. 콜롬비아에서 성업중인 장사 중 하나는 바로, 허리띠 맡아 두기. 남자들은 허리띠를 한 채로 입장을 할 수 없었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번호표를 나눠주고 허리띠를 임시로 맡아주는 신종 비즈니스가 등장한 것이었다. 우리도 허리띠를 보관해야 하나 한참 고민했는데, 가만 보니 여자들은 가방 속도 제대로 검사를 하지 않으니 내 가방에 팬더 허리띠를 넣고 들어가서 다시 허리띠를 메면 될 것 같다.
이어달리기의 바톤을 넘겨 주는 것처럼 입장권을 우리에게 넘겨 주고는 우리 보고 빨리 들어가라고 등 떠미는 그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스태디움 안으로 들어왔다. 음, 들어가자 마자 우리의 느낌은, '뭐, 별 것 없네' 였다. 정말 그랬다. 올림픽 주경기장 보다 조금 작은 듯한 스태디움에, 가운데 무대에서는 끝도 없이 계속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고, 또 음악이 흘러 나오고, 그 무대 근처는 1등석 표를 가진 사람만 들어 갈 수 있었고, 나머지 구간은 어디라도 편하게 앉든 눕든 춤추듯 온전히 우리들의 자유였다. 그리고 곳곳에는 각종 간식을 파는 사람에 화장실 영업을 하는 사람, 큰 회사에서 나온 카니발 기간에 회사 홍보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포진 해 있었다.
<스테디움 안.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곳>
우리는 2층에 올라가 잠시 앉아 있다, 다시 밑으로 내려와 음식 값이 얼마인지 물어보다가 (꽤 비싸다, 스테디움 바깥보다 약 3배는 비싼 듯. ), 콜롬비아의 대기업인 꼼셀의 무료 물통 나눠주기 이벤트에 줄 서서 물통도 한 병씩 받고, 가장 저렴한 음식을 찾아 한 접시 비우고, 음료수 한 잔씩 마시고, 잠시 잔디에 앉았다. 생각보다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우리가 모르는 음악들만 나오는데 별로 신나지도 않고, 바깥에선 둘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돈으로 아껴서 작은 것 하나밖에 못 먹는 게 괜히 궁상맞아 보이고, 시간은 너무 느리게 지나간다. 우리가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시간을 이 곳에서 때워야 할 것 같은데, 막상 즐겁지도 않는 시간을 무작정 보내는 게 오히려 시간의 손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미련 없이 스태디움을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 게 벗어났던 그 곳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가고 싶어 안달 난 곳이라는 것을 문 밖을 나서면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그토록 재미없던 곳이었는데, 왜 저들에겐 그토록 가고 싶어 못 견디는 그런 곳일까? 이게 바로 문화의 차이 때문일까?
바깥으로 나오자, 바깥의 공기가 너무나 맘에 들었다. 우리가 자유인 것 같고, 다시 저렴해진 물가도 마음에 들었다. 상큼새콤한 애플망고에 소시지까지 하나 먹으니 아까 부실하게 먹은 저녁이 보상 받는 것 같았다.
한참 옆에는 주사위 게임이 흥행중이었다. 주사위 합에 따라, 꽝, 천페소, 이천페소, 오천페소, 만페소, 이만페소, 오만페소, 한 번 더 등등이 있었고 일확천금이라고 하기엔 작은 돈이지만 최고 25배까지 받을 수 있는 오만페소를 향해 열심히 주사위를 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양궁게임 역시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역시, 저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바깥에서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사람들의 놀이도 구경하는 것이 우리에겐 훨씬 즐겁다. 다른 기념품 샵들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거리를 거닐려는데 어느 새 30미터 남짓한 길이 끝나버렸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인가? 티켓 값은 아까웠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며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향하려는 그 순간 이었다.
사람이 많은 복잡한 길에서 나는 평소와 같이 오른쪽 끝에 서서 먼저 걸어가고 약 2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팬더가 걸어오고 있을 때, 말 많은 팬더가 어쩐 일로 조용하다 싶어 뒤를 돌아 본 순간. 세 명의 무리에게 양 옆과 앞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세 명 모두 어둡기도 하고 모자를 쓴 사람도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10대 후반의 나이로 앳되 보였고, 정면에 선 청년1은 스노우스프레이로 팬더 눈을 가차없이 공격 해 눈을 뜰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스노우 스프레이를 막기 위해 두 손을 눈가로 올렸을 때 갑자기 양 옆으로 청년2,3이 달려들어 주머니를 뒤지는 그런 수법이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움켜 잡고 얼른 사정거리로 뛰어 들어가 주머니를 뒤지는 그 손을 '찰삭 찰삭'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청년2 귀에다 대고,
"야~~~~~, 너 죽을래~~~~~~~~~!!!"
만을 죽어라 소리쳤다. 그 순간에는 영어도 스페인어도 기억 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5분 처럼 느껴졌던 약 5초 간의 상황들이 지나버리자 사람들이 한 두 명씩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그 3인조는 싱겁게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우리와 1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람 많은 대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또, 순간 내가 어떻게 칼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청년에게 재빠르게 달려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미가 위험한 곳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당하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려 잘 서 있지도 못하겠다. 아, 3일간의 광란의 카니발 마무리를(총 4일이지만, 내일 오전에 떠나는 우리에겐 총 3일의 카니발이다)강도 미수사건으로 하는 구나. 허탈감에 그리고 다리는 아직도 후들 떨리는데, 사건 발생 1분도 안 되서 또 콜롬비아 사람들은 같이 사진 찍자고 우리를 부른다. 마지못해 같이 사진을 찍는데도 내 표정이 밝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 난 안 좋은 일을 빨리 잊는 것에 약하다. 오랫동안 나의 불운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한다. 반면, 팬더는 안 좋은 일을 빨리 잊는 것에 강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걱정 좀 그만 해. 어떻게든 다 해결 되기 마련이니 지금부터 걱정 할 필요 없어."
"아직도 그걸 생각 해? 빨리 잊어 버려. 그런다고 뭐 바뀌는 것도 없는데…"
이렇게 말을 해댄다.
'미래를 걱정하는 남자, 과거에 집착하는 여자' 인 우리들.
아무튼, 그렇게 오늘 큰 일 당할 뻔 하고도 돈 아끼겠다고 택시 안타고 집까지 걸어 가는 우리들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난다. 아무튼 지독해. 그렇게 길을 잘 못 든 것까지 포함 해 약 30분이 넘게 걷고는 집에 도착 했다. 집주인들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자기네들이 대표해 나쁜 기억에 대해 사과를 한다. 역시 많이 배운 사람들은 다르긴 다르다. 우리도 약속한다. 나쁜 한 번의 기억으로 좋았던 많은 기억들을 폄훼하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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