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2 Wed 2010
주유소 한 켠에 세워둔 으릉이 안에서 아침 잠을 깬다. 약간 허리가 아프긴 하지만, 고맙게도 하룻밤을 잘 보냈다. 평소 같으면 아침 밥을 해 먹었겠지만, 주유소에서 불을 피우는 건 굉장히 위험하니 생략하고, 우리가 밤을 보낸 그 주유소에 200페소 주유를 하곤 출발!!
여기서 바로 바릴로체로 갈 계획이었으나 론니플래닛을 뒤적 뒤적 해 보니, 근처의 '라구나 블랑까(Laguna Blanca)'라는 곳에 가면 예쁜 새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또 '씨루끼또 뻬에니아(Cirucuito Pehuenia)' 라는 근처 호수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코스도 근처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금 우회해서 바릴로체로 가기로 한다. 뭐, 조금 돌아가긴 해도 예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익이고, 마침 차가 있으니 남들이 잘 가지 못하는 곳도 우린 쉽게 갈 수 있다.
그렇담, 목적지는 라구나 블랑꼬(하얀 호수라는 뜻)로 결정! 도시를 벗어나는 길에 경찰 검문에 딱 걸렸다. 앞 차가 검문 당하는 중일 경우, 걸린 확률이 거의 없으나 밀린 차가 아무도 없다면 우리가 검문 대상이 될 확률 거의 100%다. 왜냐면… 우린 앞 번호판이 없으니까..!! 앨버타 주에서 온 게 이럴 땐 왕짜증이다. ㅠ 그래도 우릴 검문하는 경찰은 굉장히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창문을 내리자 마자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자동차 등록증, 운전 면허증 등을 요구했고, 왜 앞 번호판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우린 번호판이 뒤에만 있는 주에서 왔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 하니 잘 알아듣는 눈치다. 하지만 외국인 차 검문은 처음인지, 우리의 서류를 가지고 상사에게 가서 보여 주고 물어 보더니, 별 말 없이 우리를 보내 준다. 으흠 다행이다. 예의 없고 돈 밝히는 나쁜 경찰들만 만나다 이렇게 예의 있는 착한 경찰들을 만날 땐 한 번씩 어리둥절 하다. 자꾸만 나도 모르게 경찰=나쁜넘 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경찰만 보면 긴장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경찰들을 토대로 통계를 내 보면, 젊을수록 부패정도가 덜하고, 나이가 지긋할수록 부패정도가 더 심하긴 하다. 우리가 오늘 만난 경찰은 우리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 보고, 친절하게 길까지 설명 해 주고, 질문 있냐고도 물어봐 주는 착한 경찰. '칭찬합시다'라는 카드가 있으면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 고마워요!! 착한 경찰씨!!
아침 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배가 살짝 고파서 GPS에서 찾은 Municipal Camping으로 가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가기로 했다. 보통 정부에서 하는 캠핑장에 가 보면, 빠리샤도 많고 그 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으니, 그 곳에 가서 우리도 아점을 해결하려고 한다.
막상 도착한 그 곳은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괜히 민망스러워 조금 그 곳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그 곳에서 안성탕면을 끓여서 밥까지 말아 먹으니… 이히!! 배 부르니까 참 좋네 그려~
밥 먹으니 살짝 졸려서 난 조수석에서 꾸벅 조는 데, 팬더가 심심하다고 나를 깨운다. 난 일기 쓰느라 늦게 자서 그렇다는 핑계로 조금 더 졸기로 하고, 대신 팬더에겐 음악을 틀어 준다. 히히~ 음악들아, 나 대신 팬더와 좀 놀아 주렴^^~
30분쯤 지났을 때, 팬더가 도착했다고 날 깨운다. 오잉? 벌써? 근처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 전망대 역할을 하는 작은 언덕에 올라 가니 호수 전경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이 곳이 바로 라구나 블랑까 구나. 오랜만에 보는 설산과, 설산과 어우러지는 호수 전경이 시원하게 가슴에 탁! 하니 박힌다. 호수만 있었으면 좀 심심했을 텐데, 예쁜 설산이 뒤에 펼쳐져 있으니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모르겠다.
<저~~멀리 라구나 블랑까가 보인다. >
<라구나 블랑까 앞. 작은 전망대가 있어요>
<전망대에 있던 트럭 위. 미쉐린 인형 ㅋㅋㅋ>
이젠 조금 더 가까이 호수로 가 볼까?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호숫가로 갔더니, 우리 말고 또 다른 자동차 여행자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 온 둘은 부에노스아이레스부터 자동차 여행을 시작해서 아르헨티나가 첫 나라라 했다. 우리랑은 반대 코스인 셈이다. 미리 캠핑용으로 차를 개조해 온 그들을 무척이나 부러워 하던 팬더. 나중에 우리 나라가면 꼭 캠핑카를 사고 싶다고 한다. 물론 있으면 좋지만… 비용이…??
오늘 하루 그 호숫가에 잔다던 그 커플을 두고, 우린 다시 길을 떠난다. 오늘 하루 일정을 멈추기엔 해가 너무 길게 남았으니 힘을 내서 조금 더 가 보자. 다음 목적지는 '알루미네'(Alumine)라는 마을. 론니에는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되어 있는데… 얼마나 멈췄는지 봐야겠다.
<저~~아래 길 까지 내려 가면....됨 ㅋㅋㅋㅋ 으흣~~>
알루미네강을 따라서 많은 투어회사들이 줄을 서 있었고(낚시, 래프팅 등을 위한…), 알루미네 강을 끼고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서 강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는 예쁜 까바냐(영어로는 캐빈, 한국말로는 통나무집이라고 하나?)들이 주르륵 모여 있었다. 아… 저런 곳에서 자면 좋을 텐데… 춥지도 않고, 방도 예쁘고.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 매기로 한 우리에겐 꿈 같은 장소로만 보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런 집 하루 빌리는 데 300페소는 할 것만 같아 가격은 물어도 보지 못하고 그냥 침 흘리며 쳐다 보기만 했다. ^^;; 그런데 론니 플래닛에 써 있는 말이, 비수기땐 저렴하게 까바냐를 빌릴 수 있으니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 보라는 것이다. 뭐, 손해는 없으니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한적한 곳에, 손님이 과연 올까 싶은 작은 인포메이션 센터로 들어 서니, 심심해 보이는 직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의외로 잘 정비된 인포센터엔 숙소 가격과 조건들이 표로 잘 정리된 리스트가 있었고, 4인 이상일 경우 놀랄만큼 싸게 예쁜 까바냐를 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2인인 경우와 4인인 경우에 방 값이 별로 차이 안 나서(1인당 20페소 씩 차이 난다. 즉 2인160페소, 4인 200페소), 우리에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가장 저렴한 120페소 별 하나 호텔에 한 번 가봤지만, 시설이 별로라 그 돈 주고 자기엔 아까워서 오늘 차에서 하루 더 자고, 120페소 짜리 밥이나 한 끼 더 먹기로 했다.
그럼 미련 없이 호수투어를 위해 가 볼까? 우리가 가려는 곳은 호수 4~5개 정도를 한 번에 돌아 볼 수 있는 '씨루끼또 뻬에니아(Cirucuito Pehuenia)'라는 이름의 코스로, 차를 타고서 원으로 한 바퀴 도는 데 4~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론니에 써 있기론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한 스펙터클한 경치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하니… 가 보자궁~
혹시나 하고 가기 전 인포센터에 물어 보니, 한 바퀴를 도는 길이 현재 눈 때문에 길이 도중에 끊어지는 바람에 아래쪽 호수 보러 왕복을 하고, 다시 윗쪽의 호수 보러 왕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원래 한 바퀴 돌려고 했던 코스를 수정 해서,윗쪽은 빼고 아랫쪽 호수만 보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기 전 충분하게 주유를 하고는 필요한 물도 주유소에서 보충 한다. 차에 다 쓴 생수 통 혹은 콜라 통에 비상용 물을 싣고 다니는데(약 13~ 15리터), 우리 이빨닦고 세수할 물 + 요리용 등으로 사용 된다.
미끄럽게 알루미네 마을을 빠져 나가는 데, 어라… 갑자기 비포장 길로 바뀐다. 어쩐지… 눈 땜에 도로가 막혔다길래, 눈 치우면 되지 왜 도로가 막힐까 생각했었는데… 비포장이라 그랬구나. 평균 80km/h 에서 평균 30km/h로 슬금 슬금 비포장 길을 따라서 달려 본다.
가는 길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평화로워 보이는 문명과는 조금 떨어진 느낌의 굴곡이 살아 있는 비포장길을 따라서, 줄기차게 흐르는 알루미네 강, 그리고 그 강을 따라서 생성된 목초지, 또 그 목초지를 따라 행복하게 무리 지어 다니는 양과 염소들, 그리고 우리들.
이 곳에 호수가 많은 까닭은, 알루미네 강이 흐르다가 중간에 멈춰서 고이게 되면 그게 호수가 되기 때문이었다. 아하~ 그래서 이 호수들은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멈춰있지 않은 호수들인 것이다. 우린 가장 큰 호수인 논뻰 이란 호수에 터를 잡고,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호수 바로 앞에 우리 으릉이를 대 놓고, 호수를 바라보니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리고 바로 앞에 으릉이도 서 있으니, 꼭 호수가 우리 것 마냥 착각까지 든다. 팬더는 한 술 더 떠 원래 이름 대신 이 호수는 토끼호수라고 이름까지 붙여 준다. 헤헤~ 토끼호수~~ ^^
호숫가에서 물 떠와서 쌀도 씻어서 밥도 하고, 감자와 양파 밖에 넣지 않아서 소박하지만 충분히 맛있는 카레도 만들었다. 따듯한 카레밥을 먹으니, 오늘의 피로가 싸악~ 풀리는 것 같아 행복하다. 헤헤~
그리고 작은 바가지에 물 떠서 간단하게 세수도 하고, 이빨도 닦고, 으릉이 안에서 보호 받으면서 오락도 신나게 한 판 한다. 난 테트리스와 같은 색 공 맞춰서 터트리기 게임, 팬더는 비행기 혹은 격투 게임을 주로 하는데, 오락실에 있는 거의 모든 게임 종류가 컴퓨터에 있다.
아~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지만, 둘이라서 즐거운 캠핑생활. 하지만 벌써 3일 째 캠핑이라… 내일은 좀 샤워라도 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
<Lago Nonpehuen. 호수 앞에 주차하고 오늘은 여기서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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