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 As]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하루.
Aug 08 Sun 2010
오늘은 정들었던 민동미씨와 김문성씨가 나가는 날. 이 둘은 여행 중에 만나 연인이 되었고, 조용한 문성씨와 활발한 동미씨가 서로를 보조하며 잘 어울렸다. 우린 감쪽 같이 문성씨가 소식가인줄만 알았었는데, 곰곰오빠가 한 밥은 너무나 많이 먹는 걸 보고는 놀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한 밥은 맛 없다고 잘 먹지를 않고, 차마 맛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소식을 한 것이었다. 그걸 알고 나선 한 참 동안 웃고 놀려 먹은 기억이 나는데, 벌써 떠나간다니 아쉽기만 하다.
일요일 오후, 호스텔이 가장 한산 할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르르 산텔모 시장으로 놀러 갔고, 팬더와 나 둘만 호스텔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오후 4시쯤 온다는 병하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일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병하씨 편에 우리 짐을 좀 실어 보내기로 해, 검정색 , 지금은 고장난 수트 케이스에 물건을 넣고선 랩과 테이프로 칭칭 감아 버렸다.
안 그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면 짐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우리 짐을 들고 가 주신다니 잘 됐다. 우린 봉투 안에 택배로 보낼 주소와, 택시비, 그리고 수고비를 넣고 봉투를 닫았다.
'왜 이렇게 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고 있을 때에 승재오빠와 병하씨가 등장을 하고 난 콜택시에 서둘러 전화를 한다. 비행기 시간은 오후 8시라 아직 시간 적 여유는 있었다.
잠시 후, 띠리리리 하는 벨 소리가 택시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말이 참 없었던 경상도 사나이 병하씨는 가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떠났다.
잠시 후, 크리스탈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선 오늘 클럽 시라(Club Syrah)에서 트로피칼 공연이 있다고 몇 명이나 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입장료 없이, 음료만 주문하면 핏자는 나올 것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오호~
우리 다같이 가기로 하고, 출동 준비 완료. 그런데 띵~동 하고 반가운 얼굴 유정씨가 보인다. 그런데 발을 절뚝~ 절뚝~ 하며 배낭을 메고 걸어 들어 온다. 우루과이 간다고 3일 전에 나갔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유정씨는 뽀얀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개에게 물려서 그렇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떼 비데오에 도착한 오후 2시, 거리 곳곳을 돌아 다니는 중에 어린 아이 두 명이 와서 구걸을 했고, 유정씨는 'No'라고 의사 표시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자, 큰 개가 유정씨에게 달려 들어 발바닥이며 복숭아뼈, 발등 등 여러 군데를 사정 없이 물어 버렸고, 너무 놀란 틈에 유정씨 지갑을 아이들이 들고 가 버렸다고 한다. 그 후, 병원을 찾아서 주사도 맞았고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말을 하는데,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잠시 후, 우리 모두 크리스탈 선생님이 초대하신 트로피칼 쇼에 가기 위해 우르르 나가 버리면, 유정씨 혼자 호스텔에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우리 맘이 편치 않았다. 우리가 내린 가장 좋은 결정은 예약해 놓은 팬더 몫의 자리를 유정씨에게 주고는, 팬더가 호스텔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여럿이 기분 좋게 어울리다 보면 좋지 않은 일들을 빨리 잊지 않을까 하는 배려 였다. 팬더는 바쁜 일이 있어 못 가게 되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고선, 우린 택시를 잡아서 클럽 시라로 이동 했다.
문 앞에서 기다리다 보니, 크리스탈 선생님과 남편 다니엘이 도착했다. 다들 입장시간이 되지 않아 문 밖에서 기다리는 데, 가만 보니 우리들 옷차림만 가장 엉망이다. 다른 이들은 한 껏 신경 쓰고 나온 것이 명백히 눈에 보이는데, 우리들은 등산복과 등산화에, 트레이닝 복, 쪼리 등등 아무리 여행자라고 하지만, 민망할 정도다. 히유~
하필이면 스피커 옆에 자리를 배정해 줘서 음악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리는 통에 옆 사람과도 대화 하기 어려울 정도다. 트로피칼 쇼가 대체 언제 시작 될까 하며 한 두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드디어 뭔가 시끌 벅적한 소리가 들려 온다. 오~ 드디어 시작 이구나.
그런데… 이거 트로피칼 음악이 맞아? 의심이 드는 음악 반주가 나오더니 잘생긴 가수 한 명이 나와 열창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듣다 보니, 크게 노래를 틀어 놓고 그 노래에 맞춰 같이 부르는데, 가수라고 나온 사람이 노래를 너무 못한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그 사람 뮤직 비디오도 흘러 나오고… 저렇게 노래를 못하는 가수에게 엄청나게 호응을 해 주는 관객석… 아무래도 수상하다. 알고 보니, 루이스 미겔이라는 엄청나게 유명한 멕시코 가수의 짭퉁 가수쇼 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로 치면, '너훈아쇼 ?' 으하하하~ 노래도 엄청 못하는데 얼굴만 닮았다고 저렇게 나와 콘서트를 하고, 또 사람들은 열광하고… 참 웃긴다.
트로피칼 음악쇼라고 알고 온 우리는 순간 벙 찌긴 했지만, 일명 '너훈아 아저씨'의 손짓과 발짓에 매료되어 열광적인 밤을 보낸다. 성인 관광 나이트에 온 것처럼, 다들 무아지경으로 노는 모습이 너무나 웃긴다. 그 중, 가장 신난 건 동미씨! 쇠고기도 별로 안 좋아하고, 땅고도 그저 그랬던 동미씨에겐, 지금 이 순간이 부에노스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이라고 한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트로피칼 음악 쇼가, 한 사람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일 수도 있다니!! 재밌다.
생각 보다 조금 일찍 자리에서 일어 나, 호스텔에 돌아 와 보니 얼굴이 새 빨개진 팬더는 정실장님과 보드카로 한 판 붙는 중이었다. 둘이서 그 도수 높은 보드카 960ml를 다 끝장 내 버리다니… 대단한 걸!!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지, 전 보다 더 친해져 보이는 그들이다.
전 매니저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호스텔 이야기로 새게 되고 결국은 조금 불편한 이야기까지 나와 버렸다. 바로 채모양 때문에 불거진 사건! 몇 일전, 미리 예약을 해 놓은 채모양(숙박 후, 깔라파테 다녀 왔음)은 맡겨 둔 짐을 가지러 와선 갑자기 다른 호스텔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유는 같이 온 동행이 인터내셔널 호스텔을 가고 싶어해서 라고 했다(나중에 안 사실인데 예약을 취소한 이유는 그 동행이 남미사랑이 지저분 하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채모양한테 함께 옮기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파 라면 하나만 끓여 먹고 가겠다는 말에, 차마 거절은 하지 못하고 그러라고 하고 밥도 내어 주고는 많이 먹으라고 했다. 이미 이 곳에서 숙박을 했던 사람이고, 매니저님을 비롯한 다른 투숙객들과도 친하게 지낸 분이라 매정하게 내칠 수는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 것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매일 같이 놀러 와서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놀고 가는 모습이 마음이 걸렸다. 그 분이 온 목적도 전 매니저님을 만나러 온 것이라 알아서 얘기하겠거니, 혹은 우리가 나서서 제지하는 게 꺼림칙했던 터라 우선은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채모양을 우리가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말씀을 듣자니, 솔직히 기분이 상했다. 거기다, 우리가 나서서 술자리를 만들어 사람들 친해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총대를 매고 모든 숙박객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약간 화가 나기 시작한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은 좋지만, 너무 선을 많이 넘으셨다는 걸 모르시는 걸까?
우선, 여기 주인장인 덩헌님과 통화를 해서 외부인 방문에 대한 건을 마무리 지을 것이고, 우리가 부담스럽거나 싫은 일은 안 할 거라고 말씀 드렸다. 전 매니져님 스스로도 자진해서 투숙객들을 위해 요리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나에겐, 전 매니저님이 말하는 매니저 일이 Too much 하다는 걸 모르시는 걸까? 가뜩이나 변변찮은 자유 시간 하나 없는 지금이 속상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우리를 Push 하는 거지? 이해 할 수가 없다. 그 분이 미워지기 전에 여기서 대화를 종결 했다.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 끙끙 대며 들고 다닌 짐을 보낸 후련함, 돌아온 유정이에게 느낀 반가움, 그리고 사고 소식에 대한 안타까움, 의외의 이벤트에 즐겁게 웃다가,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속상하기도 한 날. 많은 감정들이 차곡 차곡 들어 있는 종합 선물세트를 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오늘 이다.
아 참, 남미사랑 주인장인 덩헌님과 대화를 한 끝에 외부인 출입 규정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원래는 없던 규정인데, 지난 여름 만드셨고 현재 남미사랑 관리인은 우리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알아서 하라고 하신다. OK. 오히려 마음이 편해 졌다. 자잘한 규정 때문에 신경 쓰는 이 일도 못할 짓이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