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to] 팬더와 토끼 잠시 헤어집니다
[ May 01 Sat 2010 ]
5월 1일. 아침부터 노동절 관련 행사로 볼리바르 광장은 사람이 한 가득이다. 우리 방에서 바라보는 볼리바르 풍경이 난 참 좋다. 잠시 화장실 갔다 방으로 돌아 오는 데, 방 문을 잘 못 여는 실수를 해 버렸다. 7번 방과 6번 방이 헷갈린 것. 그런데 이 건 왠걸. 갑자기 방에서 우악스러운 개 한 마리가 튀어 나와 날 삼켜 버릴 듯이 짓고 날 물기 직전까지 갔을 때 주인이 제지를 했다. 물론 방문을 잘 못 연 내 잘못도 있지만, 호스텔에 개를 데려와선 어쩌자는 건지. 주인아줌마 얼굴만큼 개도 흉악스럽게 생겼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나온 팬더와 승재오빠도 단단히 놀랐나 보다.
아침식사 후, 나는 방으로 올라 가 짐 정리를 한다. 오늘 끼토를 떠나는 토끼와 끼토에 남는 팬더는 눈물로 잠시 이별을 하기로 했다. 오늘 밤 버스를 타고 과야낄로 가서 정선언니 마중을 나갈 예정이다. 작은 백팩에 목베게, 침낭, 간단한 세면 도구들만 챙겨 넣고는 준비 완료! 짐 다 쌌다.
2층으로 내려가 보니, 큰 오빠는 어느 새 아침 일찍 나가서 아이팟 터치를 사 와서는 승재오빠와 한참 해킹 프로그램 설치 중이었다. 밤 새 얼마나 고민했을까. 살까 말까, 살까 말까, 그러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사러 나선 거겠지…
팬더는 잠깐 인터넷을 하더니, 우리 짐이 드디어 에콰도르에 왔다고 기뻐 한다. 헉 진짜? 드디어? 몇 일 동안 한국에 민원전화와 메일을 보낸 게 이제야 효과를 보는 건지, 아님 올 때 되서 온 건지. 물건 보낸 지, 꼭 만 3주 만이다. 비즈니스 데이 기준 5일이면 도착하는 보증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3주 만에 도착한 우리 EMS. 기가 찬다. 유럽 화산재 때문인지,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리기 3주 만에 드디어 에콰도르에 도착 한 것이다. 그런데 에콰도르 도착 해서도 세관을 통과하고 그 후에 중앙 우체국, 담당 우체국의 순서로 가기 때문에 우리 손에 언제 들어오게 될 지는 아직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다음주 월요일에는 도착할 것 같아서 한 층 마음이 놓인다.
호세 아저씨는 갑자기 "루니따~ 루니따" (작은 루나=토끼를 부르는 말.. 귀엽게)하며 나를 호들갑스럽게 찾더니, 부엌 청소 깨끗하게 해 놨다고 칭찬 해달라고 한다. 내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자, 30분 뒤에 또 다시 나를 호들갑스럽게 부른다. 다시 보니, 요리 준비대 겸 식탁으로 쓰이는 탁자를 예쁜 비닐로 식탁보처럼 씌웠다고 예쁘지 않냐고 물어 보러 부른 것이다. 나름 귀여운 호세 아저씨ㅋ 나만 너무 좋아하며 찾자, 승재오빠는 질투가 나는지, 맨날 밥 주는 건 난데… 하며 말 끝을 흐린다. 마땅히 저녁을 못 먹는 아저씨를 위해 우리가 저녁 할 때마다 충분한 양을 만들어 아저씨 몫도 준비해서 드렸다.
처음엔 난 호세아저씨가 주인인줄 알았는데, 주인은 따로 있고 일하는 아저씨였다. 잠을 공짜로 자고, 일 하면서 한 달 월급은 US 50정도 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다. 히피들이 숙박객으로 많은 탓에 거리 공연 수익금으로 하루 하루 방값을 내서 5센트, 10센트 등 작은 동전으로 방값을 계산해도 천직처럼 열 개 씩 묶어 테이프에 감아 가면서 즐겁게 돈을 세는 호세 아저씨다. 난 당연히 주인인줄 알고, 돈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정을 승재오빠는 이미 알고 저녁을 매번 챙겨 줬던 것이다. 가만 보면, 누구에게나 음식을 잘 베풀고 나눠 먹을 줄 아는 승재 오빠의 모습이 보기 좋다.
몇 일이 지나자, 이 곳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두 남자 형제가 이 곳을 관리하는데, 동생은 무에타이를 연마하는데 이번 12월에는 꼭 태국에 가서 무에타이 경기를 볼 거라고 한다. 암튼 주인부터, 일하는 아저씨들, 숙박객들 하나 같이 다 재밌는 사람들이다.
오후 5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내가 내 몫의 돈을 지금 내야 하는 지 묻자, 한국사람들은 믿기 때문에 그냥 가라고 한다. 나중에 팬더가 체크 아웃 할 때 한 번에 받으면 된다고 한다. 남미 사람의 경우, 형제 나라들이지만 잘 못 믿어서 하루마다 방 값을 계산하게 하는데, 한국이나 일본, 미국 사람들의 경우는 후불제로 받는다고 한다. 암튼 재밌는 곳이다.
또 다시 끼토 시내는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 진다. 최대 절정 우기인가 보다. 우리는 한 동물병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여 오창선 아저씨를 기다린다. 이번에는 집에 초대해서 밥 먹인다고, 오늘 과야낄로 가는 날 위해 급하게 잡은 약속이었다.
우리 셋은(토끼, 팬더, 승재오빠) 아저씨 차를 타고 아저씨네 집으로 간다. 구 시가지에선 약 3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좋아 보이는 동네였다. 아저씨 말로는 끼토의 분당구 같은 곳이라고 한다. 아저씨 집 문 앞에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고, 우린 맨 꼭대기에 있는 펜트 하우스로 올라 간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가 본다고 생각하니 기대 된다. 2층으로 이루어진 집 구조는, 1층에는 운동장만한 거실과 강당만한 파티오, 그리고 쾌적한 주방이 있고, 2층에는 방만 있다고 한다. 확 과야낄이 아니라 여기서 침낭 꺼내고 싶을 정도로 집이 넓고 예뻤다.
사모님이 준비해 주신 저녁 밥상. 평소에 못 먹어 보던 것들이 한 가득 이다. 맛있는 밥에 시래기 된장국, 잡채, 브로콜리 반찬, 김치, 김 등등 거기다 하이라이트인 닭갈비 까지. 닭갈비 안에 씹히는 쫀득 쫀득한 떡이 일품이었다. 여쭤보니 이 곳에도 방앗간이 있다고 한다. 우린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더 들어갈 틈이 없을 때 또 준비된 맥주와 음료수, 그리고 케익까지. 오늘 정말 대단히 잘 얻어 먹고 간다.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해야 할 지…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진수성찬이 펼쳐졌습니다.@@>
<이 사진은 뭥미??? ^^>
자리를 거실로 옮겨, 주시는 과일을 먹으며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산악인인 승재오빠와 아저씨는 말이 잘 통하는 듯 했다. 평소 산을 멀리 한 나와는 달리 젊은 피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아저씨 큰 딸인 '비나'는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거라고 한다. 부모님의 생각은 한국적인 사고를 갖추고 한국어를 더 능숙히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한국으로 대학을 가기를 원했고, 비나는 조금 겁이 나는 듯 보였다. 혹시나 나와는 다르다고 해서 따돌림을 시키지는 않을까, 외롭지는 않을까 이것 저것 다 걱정이 되나 보다. 하지만 한국은 재미있는 사회라 익숙해지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나 힘내요!!
난 갈 시간이 되, 다시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저씨 차에 올라 탔다. 고맙게도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시는 친절한 아저씨.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은 분이다. 거리는 생각 보다 꽤 멀었다. 약 45분~50분을 꼬박 가서야 도착한 버스 정류장. 새로 지은 시설인지, 반짝 반짝 화려 하고 편리 시설을 싹 갖춘 곳 이었다. 버스 탈 일이 전혀 없는 아저씨도 처음 와 보셨는지, 참 좋다고 에콰도르에도 이런 게 생겼다니 하며 신기해 하신다.
가장 빠른 표를 사니, 30분 뒤 출발이다. 내일 아침 6시~ 7시 사이에 도착 한다고 한다. 'Conejo(토끼)'라는 이름으로 아저씨가 버스표까지 사 주셨다. 감사합니다. ^^ 그리고 같이 버스 타는 사람들에게 내 조카니까 잘 부탁 한다고 인사까지 해 주시는 덕에 한 결 마음이 놓인다. 사실 혼자서는 밤 버스를 처음 타 보는 탓에 조금 떨렸다. 게다가 여긴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 남미가 아닌가!!
모두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한 번씩 포옹을 하고는 버스 타러 들어 간다. 약 2년 만에 처음 떨어져 보는 팬더와의 헤어짐이 쉽지 않다. 팬더야 얼른 와야 해!! ㅠㅜ 팬팬~ 팬팬~ 팬팬~
<토끼야 안뇽~~~~~~~~~~~ 잠시만 안뇽~~~~^^ ㅋ>
버스에 올라 타, 백팩을 자물쇠로 버스와 고정 하고, 에어베개를 꺼내 불고 침낭 꺼내어 덮으니, 날 신기하게 쳐다 본다. 그리고는 왜 자물쇠로 그걸 고정 하는 지 물어 본다. 난 삼촌이 여기서 20년을 살았는데, 매 순간 조심하라고 얘기 해 줬다고 하니, 코 웃음을 치며 "심장을 믿어야지" 라 대답한다. 과연… 그렇게 믿다 당한 사건 사고가 몇인데… 나 역시 작게 코 웃음을 치며 밤 인사를 하고 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