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Central Ameri.)/Panama

Jan 18 Mon 2010 [Panama city] 사색의 여유- <토끼 이야기>

팬더는팬팬 2010. 2. 5. 23:44

 토끼가 씁니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아침부터 계속 메일함을 뒤져보는 운송회사로부터 메일이 오지 않는다. 그러지? 우리가 너무 재촉하면 싫어 수도 있으니 계속 기다려봐야 겠다. 계속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기다리다 점심을 먹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용기 내어 메일을 보내봤다. 잠시 , 우리가 지난 금요일에 방문했던 회사에서 답장이 왔는데 아이티지진 관련 바쁜 운송 스케쥴이 생겨서 연락을 못해 미안하다고 다시 내일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그렇담 다시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어쩔 없다. 그리고 다른 곳은 우리 서류를 받고 부킹을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는 보니 아직 시간이 필요한 가보다. 아무튼 계속 기다려 봐야 겠다. ㅠㅜ 이럴 알았으면 코스타리카 혹은 나라들부터 계속 이메일을 통해서 연락을 것을… 도착해서 해결하려 하니 시간이 무작정 소요된다.

 

     이렇게 시간이 김에 오늘은 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친구들과도 이야기하고 집에도 전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에 전화하니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내가 아이티를 간다고 했던 같아서 계속 고민 중이었다고 괜찮냐고 거듭 거듭 묻는다. 아이티 간다고 얘기 적도 없는데, 부모 맘이 그런 가보다. 예전에 호주 있을 때도, 원래 보지도 않는 국제뉴스를 챙겨 보면서 나도 모르는 호주 홍수에 대해 걱정하시던 우리 어머니. 나름 귀여우시다. ㅎㅎ 엄마를 다시 안심 시켜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

 

     네이트온에서 오랜만에 *언니와 채팅을 하는 , 갑자기 여행 가고 싶다고 그만둔단다. ?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지라 걱정 됐지만 재충전의 기회로 다녀 온다니 좋은 생각이다. 아직 남자친구는 언니의 여행계획을 모르고 있던데 얼른 이야기 하는 좋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 인도 여행 인도에 빠진 친구들 탓에 언니도 인도로 여행을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작은 하나 하나에 남의 다치지 않을까 걱정 하는 언니에겐, 마침 불교와 티벳 문화에도 관심이 있으니 티벳을 보는 어떨까 살짝 권유했다. (나도 가봤지만 보고 싶은 하나다. ) 언니도 살짝 흥미를 느꼈고, 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주소도 공유했다. (5 세계여행중인 멕시코서 만난 오빠꺼)

 

     오랜만에 친구 *이와도 전화통화를 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친구는 기독교가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아이다. 북키르키즈스탄으로 선교활동을 다녀 이후, 북키르키즈스탄이라는 곳과 선교라는 것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미래를 쪽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보내고 싶다고 작년쯤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말을 듣자 마자 엄청난 반대를 했고 아마 반대의 조금은 서운해 했을지도 모르지만 친구로서 당연히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친구 부모님 또한 반대를 하셨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는 찬성하지만 그걸 삶으로 갖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혼자 보내는 반대였다. 가족과 주변의 반대로 잠시 주춤했으나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 러시아 공부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온두라스 교회에서 일주일간의 생활로 나도 생각이 조금 바뀌었나 보다. 곳에서 선교활동 하시며 사는 분들을 보니 행복해 보였다. 물질적으로 많이 가진 것은 없다 해도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현지인을 잡아 놓고 예수 믿어라 하는 식의 선교가 아닌 그들 옆에서 같이 생활하고 같이 일하면서 친구가 되는 선교를 했기 때문에 심적 불편함도 덜했다. 만약 그런 방법으로, 그렇게 친구가 행복하게 있다면 것도 괜찮을 같았다. 그래서 오늘 통화 했을 , 네가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하지만 아직도 혼자 가는 반대니 좋은 사람을 만나 둘이 같이 가정을 꾸리며 살았음 좋겠다고 생각을 이야기 했다. 친구는 변화된 생각에 묘한 흥분감을 보이며 얼른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한다. 이렇게 사람이 변하나 보다. 절대 아니라고 했던 것들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고, 대립되던 생각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황희 정승의 유명한 일화처럼 말도 옳고, 말도 옳게 되는 ,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정답이 없는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되는 말이다.

 

     사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나에겐 고정관념 없는 사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정해진 답을 가지고 진행되는 유도된 상담은 상담 금기 하나이다. 클라이언트 스스로가 답을 찾을 있게 도와주는 정말 상담 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팬더의 여행 동기에 대해선 블로그에 소개 있지만, 여행 동기에 대해선 언급이 없어 자리를 빌어 소개 한다> 20,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03학번으로 학교를 입학해서 2년간 학교를 다니고 나서 전공에 대한 열정이 절정으로 뻗쳤을   학교에서는 말해 주지 않는 비밀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1년간 휴학을 하면서 직장체험 연수를 했다. 초중고 학교들을 다니면서 학교사회사업 분야에 대한 경험들을 쌓고 틈틈히 학교부속병원 정신과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일년이 지났을 모든 것이 부질 없이 느껴졌다. 선진국에선 전문직으로 인정 받으면서 좋은 대우를 받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너무 열악한 분야가 그냥 싫어진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 혹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기본적인 대우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 요구하면 봉사정신 없다고 자질 없다고 몰아붙이는 탓이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등록금을 들이며 학사에, 석사에, 박사에 공부하지만 그에 비해 받는 대우는 아직도 모자라다.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 먹고 살기 빠듯할 정도인데, 이건 부자들이 품위 유지를 위해 하는 학문도 아니고, 삶을 위해 직업을 부분으로 갖는 건지 일을 위해 삶을 희생해야 하는 건지…  일에 대한 보람과 소명감으로만 버티기엔 조금 힘든 곳임에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아를 찾으러 휴학한 1년이 혼란스런 1년으로 변해버렸고 이런 마음을 정리할 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인도와 태국으로 40일간의 배낭여행을 떠났다. 집이 엄했던 탓에 국내 여행은 수학여행 등이 전부였고, 해외여행은 고등학교 시절 합창반 일본공연 3 4 일정으로 찾은 도쿄가 전부였다. 이런 내게 준비부터 결과의 책임까지 온전히 내가 져야 하는 배낭여행의 달콤함은 엄청나게 다가왔다.

 

     그리고 여행에서 깨달은 영어의 중요성에 머리를 ~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당시, 하는 엄청 힘들고 듣는 간신히 되던 영어로 배낭여행을 했을 때다. 인도 델리의 대학교를 방문 했을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했던 인도 대학생들은 내가 대학생인데도 영어를 원활히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내가 대학교 학생 맞는지 여러 확인했다. 때의 암담함이란…  그리고 내가 자주 가던 티벳식당에서 일하던, 나와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던 청년은 아마 외국인과 결혼 다른 나라 여권이 갖고 싶었던 같다. 혹은 진심일 수도 있지만 만나지 하루 만에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반한다는 상식으로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여하튼 청년과 대화를 말이 없으니 그저 웃었을 따름인데, 나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Uni!, Please Tell me Something!" 이라고 애절하게 말했다. 말을 들은 뒤로 영어공부에 대한 절심함이 생겼다. 그런 상태에서 3학년으로 학교 복학을 했으니, 공부가 리가 없다. 학교 중간고사 기간에도 영어회화책이 펼쳐져 있고, 영어에 대한 갈증만 커져 갔다. 그리고 지난 일년 간의 경험으로 애정이 식어버린 전공수업의 영향도 무시 수는 없었다.

 

     방학 굿네이버스를 통해 베트남자원봉사의 경험은 여행과 영어, 해외생활에 대한 열망을 다시 강하게 확인시켜 주었고, 다시 휴학을 결심하고 필리핀을 거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까지 갔다.

 

     그런데 호주에서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아끼고 아껴써도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싸워야 했고, 마음껏 놀고 즐기는 유학생들과의 상대적 박탈감과도 싸워야 했고, 동양인이라는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그렇게 나름 성공적이라면 성공적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생활을 마치고 호주에서 돈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의 둘이 떠나는 여행을 성사 시켰다. 케세이퍼시픽 항공권으로 홍콩에서 스탑오버가 되는 항공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엄마 항공권만 구입하면 같이 홍콩여행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둘이 3 4일간의 홍콩-마카오 여행을 끝으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호기심과 여행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다시 돌아 한국에서 복학을 준비하며 공식적으로는 토익공부에 매진했고, 뒤로는 엄마 몰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응모했다. 남미 여행이 너무나 하고 싶어져서 이다. 때만 해도 조금 까다로웠던 절차였던 탓에 정성스럽게 에세이와 기타 서류들을 준비 해서 보냈는데 너무나 기쁘게도 선발이 되었다. 당시 비자를 준비하던 다음까페인 '빨간 깻잎의 나라 - 캐나다' 합격자 정모에서 지금의 남자친구 박도령군을 만나 캐나다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세계일주가 꿈인 내게 같이 세계일주의 그림을 그릴 있는 남자는 이상형이었다. 이렇게 우리 둘의 처음 동기는 달랐지만, 캐나다에서의 1 워킹홀리데이 현재까지 중남미 자동차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

 

     친구들은 정규 4년코스를 마치고 하고, 혹은 석사까지 마친 이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빙빙 돌아가고 있다. 처음엔 정체성 찾기부터 시작 했지만, 후엔 영어에 대한 욕심, 여행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렇게 떠남이 길어지고 있다.  지금은 여행을 통해서 여행 만난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삶에 대한 많은 발견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일들에 관해서 말이다. 어찌 보면 아직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5 휴학 )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느리지만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22 때부터 고민한 길을 27살인 지금도 하는 뿐이다. 역설적일수도 있지만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나라에 대한 애착이 깊어졌고, 다시 내가 공부한 학문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고 싶어졌다. 돌아가면 1 남은 학교를 마치고 NGO 단체에서 일을 보고 싶다. 특히 아직도 노동에 시달리는 많은 아이들을 실제로 보기도 했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일을 해보고 싶다.

      꿈이 언젠가 바뀔지도, 혹은 그들이 고용하지 않아 꿈이 틀어 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꿈을 꾸고 있고, 꿈은 가진 자체만으로도 다시 목표가 생겼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P.S.

 

-팬더가 선박 회사에 보낼 으릉이 증명 사진을 찍었습니다.

 

 

 

 

 

<똘똘하게 생긴 정면>

 

 

 

 

<찢어진 팬티를 입고 다니는 으릉이- 궁둥이>

 

 

 

 

<날씬한 옆태>

 

 

 

 

 

 

 

<얼짱 각도로 한번 찰칵!!>

 

 

 

 

<주민 등록 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