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02 Sat 2010 [Tegucigalpa ]로아탄 밖으로...
새벽 3시. 자동으로 눈이 번쩍 떠졌다. 모기들이 다 함께 총공격을 하는지 간지러워서 잠이 깼다. 이상하게 밤만 되면 베드벅스에 물린 곳들이 더 간지러워서 자다가 한 번씩 일어나서 몸을 한 시간 이상 긁고 잔다. 긁을 때마다 몸에 상처 남을 걸 알기에 죄책감이 들지만 간지러운 건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다.
어차피 5시에 기상이니 남은 두 시간 동안은 일어난 김에 영화나 한 편 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건 '김씨 표류기'. 자살시도를 한 남자가 우연히 한강에 있는 밤섬에 떨어지게 되고 마침 그 섬은 무인도라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보인다. 그 남자를 우연히 관찰하게 된 남들과의 접촉을 두려워 하는 외톨이 여자는 그 남자를 통해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게 된다. 자살이 살자로 바뀐 남자와 외톨이가 친구 한 명 있음으로 바뀐 여자. 세상이 싫어져서 자살을 시도한 남자가 무인도에서는 철저한 생존력으로 살아 남으려 애쓰는 장면이 아이러니 하다. 남들과의 접촉을 두려워 하는 여자가 망원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터넷으로 세상을 엿보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 결국은 세상과 접촉하고 싶고 살고 싶은 남녀가 삐뚤어지게 욕망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한 삐딱함 속에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장면은 나도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난 뒤 어느 덧 시계를 보니 4시 50분. 곤히 자고 있는 남자 둘을 흔들어 깨운다. 5시에는 일어나야 7시 출발하는 페리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6시에 도착 하기로 한 택시기사를 기다리는 데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불안한 마음이 밀려 온다. 우리보다 더 돈을 많이 준 승객 때문인지 어쨌는지 그 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시계는 6시 5분이 되 가는데… 혹시 페리를 못 타게 될까 봐 걱정된다. 결국 다른 택시기사와 조금은 비싼 250렘피라로 흥정 해 페리 선착장으로 향한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내 기억 속의 길은 20분쯤 이었는데 실제로는 30분이나 달려서 도착 했다. 우리는 서둘러 표를 사고는 배에 올라 탈 수가 있었다. 반댓길은 순풍이라 그런 건지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뱃값은 1인당 500렘피라로 훨씬 저렴했다.
배 안은 역시나 또 빵빵한 냉방 때문에 추웠고 일찌감치 붙인 키미테 덕분인지 멀미가 조금 덜 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해, 불편하지만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가서 드디어 도착한 라세이바. 두 남자가 짐을 찾을 동안 나는 후다닥 달려가서 으릉이가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시동도 무사히 걸리고 손상된 흔적도 없다. 이휴~ 다행이다. 그렇지만 5일 전 두고 간 옥수수와 밥은 역시나.. 저 세상으로 조용히 가셨다. ㅠㅜ
추적 추적 비가 내리는 날씨라 오늘 따라 으릉이가 있음에 더 감사하게 된다. 으릉이와 같이 출구를 빠져 나가는 데 주차료를 내지 않아 문제가 됐다. 주차료를 내야 하는 거였구나.. ^^a 긁적 긁적. 5일치 주차료는 560렘피라(약 35,280원)로 꽤 높은 금액이었다. 이휴~ 이렇게 돈이 계속 나간다.
<다시 육지로 고~고>
드디어 으릉이를 타고 출발이다. 으릉아~ 으릉이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아프지 말아라~ ^^ 오늘의 목적지는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다. 지도를 보니 직선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빙글 빙글 돌아가야 했다. 엑~ 약 8시간을 쉬지 않고 가야 테구시갈파가 나오는데.. 도착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도 부지런히 달려 본다. 온두라스는 과테말라에 비해 대형 패스트푸드 점이 많다. 거리 곳곳마다 KFC, 파파이스, 버거킹, 핏자헛, 도미노핏자, 웬디스, 던킨도너츠와 베스킨라빈스31, 맥도널드 등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미국의 영향을 그만큼 더 많이 받았단 이야기 일까? 암튼 미국에 비해 패스트푸드점 가격이 크게 싸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이 곳에서는 조금 비싼 가격이 된다. 그래서 인지,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점심을 먹을 겸 해서 파파이스에 들러, 치킨 3조각 세트와 팝콘새우를 하나 주문했는데 176렘피라가 나온다(약 11,100원). 비싸다ㅠ 다시는 가지 않을 테다. 맛도 그냥 그랬다. ㅡ.ㅡa
<테구시 가는 길.. 다리가 무너져서 돌아갑니다~~ 윽 무서워~>
<오랜 만에 보는 중앙 분리대. 중미에도 이런 길이 있군요..^^;>
계속 길을 굽이 굽이 지난다. 아무래도 테구시갈파 도착하기 전 작은 중간 도시에서 하룻밤 쉬어 가야 할 것 같다. 결국, 레스토랑과 호텔을 같이 하는 곳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다. 3명이 한 방을 쓰기로 하고 300렘피라로 흥정 했다. 이 정도면 호텔 상태도 깔끔하고 가격도 적당하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 온다. 덥디 더웠던 로아탄 섬에 있다가 해발 고도가 약간 높은 곳에 오니 더 춥게만 느껴진다. 긴 팔 옷을 껴 입고 담요 두 개를 덮으니 그제야 좀 낫다. 중남미 여행은 계속 오르락 내리락의(고도) 반복이라 반팔 옷과 긴팔 옷은 언제나 필참 이다.
오늘 점심은 외식을 했으니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왠지 하루에 2끼 이상 사 먹으면 죄책감 든다. ;;; 보통 뭘 먹어야 할 지 모를 땐, 라면을 먹는다.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서 락앤락 통에 라면을 넣고 뚜껑을 덮어서 3~5분쯤 지나 먹게 되면 훌륭한 저녁 식사가 된다. 아직까지 멕시코에서 사온 오뚜기 라면을 잘 먹고 있다. 멕시코 여행자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존재인 오뚜기 라면이다. 종류도 새우맛, 쇠고기맛, 해물맛, 닭고기맛으로 다양하니 골라 먹는 재미도 있고 가격도 저렴해(6페소- 약 540원) 부담도 없다. 멕시코를 떠날 때 준비 해 왔던 라면 114개를 아직까지 유용하게 잘 사용 중이다. 으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