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8 Wed 2009 [Trinidad] 힘겨웠던 10시간 버스 탑승
아침 8시 아바나행 버스를 올라 탄다. 다행히 지난 번 버스보다는 에어컨 냄새가 덜 나서 참을 만 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칸쿤에 잠 들어 있는 으릉이가 그립기만 하다. 차를 가지고 페리를 탈 수 있는 캐나다/미국의 시스템이 그리운 이 순간. 우리는 아바나까지 약 4시간의 버스, 그 후 1시간 반을 기다려서 아바나와 뜨리니다드를 연결하는 버스를 타고 6시간을 간다. 남들처럼 버스에서 잠도 잘 못 자는 우리는 미리 다운받아 놓은 무한도전 - 식객편을 버스 안에서 열심히 시청한다. 실버(넷북의 별명이랍니다)의 9시간 배터리 능력이 위대해지는 순간.
잠시 쉬어가는 까페테리아에서 한 분이 아는 척을 하신다. 알고 보니 그 분도 한국분이셨다. 우리가 직접 만든 티셔츠인 '팬더와 토끼의 길 떠나기'를 보고 한국사람인줄 알았다 하신다. 그 분은 직장인으로 휴가기간 동안 쿠바만 8일 일정으로 오셨다고 한다. 캐나다부터 운전 해 멕시코 칸쿤까지 갔다가 칸쿤에서 비행기로 쿠바에 온 우리의 일정을 말씀드리니 크게 부러워하는 눈치다. 사실 아바나에서 비냘레스 가는 길에도 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걸 보고 한국인인줄 몰랐다고 하신다. 1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우리의 짧은 만남이 그렇게 끝이 나고 우리는 다시 버스로 올라타야 했다. (콜라 잘 마셨습니다. 친절하셨던 분~)
4시간이 안 되는 버스탑승 후 우리는 아바나에 당도했다. 짐을 우선 맡긴 후, 1시간 반이라는 대기시간 동안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워낙 외딴 곳에 있는 터미널이라 그런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근처 빠나데리아(빵집)에서 큰빵2개, 비스킷 2개를 8M/N(400원)으로 구입 후 비냘레스에서 산 둘세구아바나(구아바로 만든 쨈으로 추정 됨)와 같이 먹으니 나름 훌륭한 점심식사가 된다. 근처 공원에 앉아서 편안하게 점심도 먹고, 버스에 시달린 영혼도 살짝~ 쉬어갈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처럼 공원에 앉아 계신 분들이 꽤 많다. 우리 나라의 경우 평일 이 시간대라면, 젊은 연령층의 대학생, 노인들이 주를 이를테지만 이 곳에서는 30~40대의 장년층도 많이 보인다. 그들의 고통을 알지 못한 채 관광객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기엔 참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여유를 즐기는 걸까? 어쩔 수 없음에 한탄의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환승하는 중에 시간이 나서 잠시 쿠바 시내 쪽으로 걸어가 봅니다. 쿠바의 보통 주택건물 ..ㅠ ㅜ>
<왕 빵을 사버립니다. 결국 3일 뒤에 다 못먹고 버리게 됩니다. ^^ 가격이 싸니깐...양심에 덜 찔립니다. 점점 불량 여행자가 되어갑니다. >
<까사데 깜비오. 환전소 입니다.>
<약국이 있습니다만....>
<실내에는 약이 별로 없습니다.>
<쿠바 주유소>
<1L 에 1CUC 입니다. 고급유는 조금 더 비싼데 1250원/L 이군요>
시간 맞춰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 화장실을 잠시 들리고 버스에 올라탔다.(Tip : 정면에 보이는 화장실에는 아줌마가 돈 바구니 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2층 까페테리아 쪽 화장실에 가면 무료 화장실 있어요^^) 아까는 4시간 이었지만 이번엔 6시간이다. ㅠㅜ 우리는 연속 해 다운받아 놓은 드라마 '어글리베티'를 보면서 마침내, 뜨리니다드로 향한다.
가는 길 중간중간 사탕수수밭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쿠바에 와서 농담처럼 하는 말 중 하나는 "사탕수수밭 20년 징역시킨다!" 이다. 예를 들어, 쿠바에서 플라밍고 공연 볼 때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는데 찍다가 걸렸을 경우 우리끼리 '혹시 사탕수수밭 20년 징역시키는 거 아냐?'라고 속닥속닥 하는 거다. 이는 미국 여기자2명이 북한에 몰래 들어갔다 잡혔을 때 아오지탄광으로 보낸다고 했던 일과 일맥상통한다. 사탕수수밭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흑인노예들의 고충이 조금은 떠오를 것도 같다.
<해는 지고...몸은 점점 비틀어 집니다.>
도착한 뜨리니다드는 역시 까사 호객꾼들이 몇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는 흑인 아저씨와 12CUC(=16000원)에 협상 한 후 새로운 까사로 향한다. 아바나 하루에 25CUC주고 잤던 걸 생각하며 절반 값 밖에 되지 않는다. 별채가 아닌 정말 옆방을 사용하는 거라 소음에 조금 걱정이 된다. 그러고보면 비냘레스 집이 참 좋았다. 민박집 아저씨의 탐욕스러웠던 얼굴만 뺴면… 앗!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체크아웃을 하는 데 어디서 보지도 못한 거짓장부를 들고 와 우리가 냉장고에 있는 물 2병을 먹었다고 우기는 거다. 우리는 1병밖에 먹지 않았는데, 2병으로 누명을 씌운다. 결국, 1병 값밖에 내지 않았지만 찝찝함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 아저씨 때문에 그 동안 좋았던 쿠바의 이미지가 조금 실추되었다. 아저씨 바보!!
우리는 3일 밤 36CUC와 내일 아침 6CUC를 선불하고, 아저씨에게 비자를 맡겼다. (집 떠날 때 비자 꼭 찾아 갈 것! 없으면 출국 못해요!!) 주스 한 잔 하겠냐고 물어보는 아저씨의 물음에 혹시 공짜인지 돈 받는 거인지 고민 되 살짝 망설이니 아저씨가 먼저 공짜라고 말씀 해 주신다. 그렇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직접 뒷뜰에서 키우는 과일로 만든 생과일쥬스는 너무너무 맛있었다. 살짝 쫀득한 느낌과 부드럽게 갈린 얼음이 10시간의 버스 탑승의 노고를 확~ 녹여주는 것만 같다.
우리의 최대 무기는 어설픈 어눌한 에스빠뇰. 말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다들 귀여워 해 주신다. 다시 한 번 멕시코에서 한 어학연수가 빛을 발하는 순간. 만약, 돈 아끼려 과테말라까지 참았으면, 과테말라까지의 여행의 재미가 덜했을 것 같다. 우리가 직접 지은 SoL 과 Luna라는 스페인 이름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 민박집 아주머니~ 크크큭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 지역 최고의 놀거리 명물인 까사데무시까로 출동하기로 했다. 9시에 만나기로 한 큰 오빠와의 약속을 위해서다. 그들은 비냘레스에서 바로 뜨리니다드까지 가는 여행사 버스인 직행버스를 타서 우리 보다 3시간이나 절약 할 수 있었다. 가격은 3CUC 더 비싸지만(40CUC), 그 3시간을 생각한다면 직행버스를 적극 추천한다. 우리는 이런 여행사 버스가 다니는 줄 모르고, 비아술 터미널에서 표를 따로 구입한 탓이다. 가이드북을 맹신하지 말지어다~~
너무 기대가 큰 탓일까? 생각보다 까사데무시까는 별로 였다. 금연자인 팬더와 토끼는 담배연기로 둘러 싸인 이 공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고, 우리가 멕시코에서 배운 살사와 스타일이 달라서 한 곡 땡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공연 후 끈덕지게 요구하는 팁도 별로. 에~~
<관광객 80% 인 까데 데 무시까>
< 9시 전 후로 2~3 팀이 연주를 합니다. >
<실제로 살사를 추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쿠바 살사의 독특함으로 구경 할 수 밖에 없는 서러움..^^>
<엇갈리는 쿠바의 평에 대하여>
쿠바라고 어찌 좋은 모습만 있겠으며 싫은 모습만 있겠는가. 다 양날의 칼, 동전의 양면이겠지. 사실, 사람은 물론이고 하물며 한 장소조차 다 두 가지 면이 공존하는 것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에게 물어보라. 상대방이 단점이 하나도 없는 완전무결한 사람인지, 분명 그리 대답할 것이다. 그 단점도 알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쿠바라는 나라도 같은 맥락이다.
주관적으로 나는 이 나라가 좋아 저 나라는 싫어 라고 말 할 때는, 기본전제는 같다. 모든 장소가 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가치와 그 장점이 일치한다면 나에게는 좋은 나라, 내가 불호하는 가치와 그 단점이 일치한다면 그 반대 선상에 위치할 테다.
음악을 전공한 큰 오빠는(재즈) 어느 한 가수에 빠져들어 오빠도 모르게 CD까지 구매했다고 한다. 이렇듯 음악을 좋아하는 큰 오빠에게는 쿠바가 좋은 나라 일 것이고, 모진 소리와 거절을 못하는 마음 여린 작은 오빠에게는 하루하루가 논쟁인 이 쿠바가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닐 것이라는게 엇갈리는 쿠바의 평판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