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30 Tue]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잠이 든 지난 밤. 아침에 일어나도 상쾌하지 않고 축 쳐지는 게… 그리 괜찮지는 않은가 보다. 우리가 기운 빠져 덩달아 기운이 빠진 건 아닌지, 은정이가 걱정된다.
로비로 가서 아침을 먹고, 우리가 사용한 시트와 열쇠를 돌려 주면 디파짓을 돌려 받을 수 있다. 난 이렇게 시설 좋은 이 호스텔에 정이 가지 않는다. 리셉션과 무슨 이야기 한 번 하려면 긴 줄을 기다려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이야기를 한다 해도 빨리 시정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호화로운 수영장이 있고, 겉보기에 화려한 이 호스텔이지만, 내 맘에 들지 않으니 그만이다. 내가 좋아하는 숙소는 작고 아담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깔끔하고, 눈치 안 보지 않아도 될 그런 곳. 아무튼 그렇다.
아침으로 나온 씨리얼에 부어 먹은 우유때문인지… 아침 식사가 끝나자 마자 배가 사르르 아프다. 팬더도 배가 아프다는데… 지난 번 후후이에서 그렇게 당해 놓고, 또 바보같이 우유를 먹다니!! 망각의 동물들~ ㅠ
우린 오늘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갔다가, 은정이는 밤 차를 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고, 우린 상황을 보고 하루는 차에서 자고 그 다음날 파라과이로 가든지, 아님 밤에 파라과이로 넘어 가기로 했다. 은정이도 같이 파라과이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가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차를 팔러 가는 곳이라,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 역시, 은정이와 함께 가면 좋지만, 중고차 매매하는 곳 위주로 다녀야 하는 지라… 괜히 지루하고 따분할까봐 염려스럽다. 또 은정이는 브라질 버스 플루마를 타고 갈 지(프로모션 하면 150페소), 아님 비싼 아르헨티나 버스를(까마- 약 400페소) 타고 갈 지도 한참 고민하다, 돈은 조금 더 쓰더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가자는 생각에 아르헨티나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하긴, 론니 플래닛에 보면 아르헨티나에서 꼭 해봐야 할 일이 아르헨티나 장거리 버스 타 보는 일이라 했는데, 경험상 아르헨티나 버스 한 번 타 보는 것도 좋겠다.
먼저 센트로로 가서, 은정이 버스표를 사고, 우린 이과수 폭포로 향한다. 이 곳 사람들은 까따라따 이과수 라고 부르는데, 아마 폭포라는 뜻이 까따라따 겠지? 폭포도 크기나 종류에 따라 지칭하는 말이 다 다른 것 같다. 우리 나라 말로는 다 폭포라고 번역이 되지만, 'salto', 'cascada', 'catarata' 모두 다르게 사용 된다. 그래서 스페인어가 어려운 걸지도 모른다. 예전에 멕시코에서 나와 같이 인떼르 깜비오(서로 언어 가르쳐 주던 친구)하던 하이디 말에 따르면, 스페인어가 어려운 이유는 하나의 물건을 지칭하는 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 한 적이 있었다. 즉 구두를 가리키는 말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 그 모두를 알아야만 대화가 된다는 말이다.
아르헨티나 현지 학생증을 가져가면 할인이 된다는 말을 익히 들었는지라, 입구에서 자연스럽게 3장의 학생증을 내밀며 할인을 요구하자… 단칼에 거절 당했다. 로컬이라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미그레이션 에서 받은 서류나 영주권 서류나 다른 서류를 추가로 요구 했다. 얼마 전에 다녀 간 내 친구는 할인을 받았는데, 왜 같은 국립공원인데 사람에 따라 다른 룰을 적용하냐며 따졌지만, 우리의 말에 당황하기는 커녕, 싫으면 들어가지 말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을 우리가 이길 수는 없었다. 들어가고 싶은 우리가 약자니, 결국 제 돈 다 내고 들어 갔다. 85페소. 아깝다!!
우린 선크림과 레펠런트를 꼼꼼이 바르고, 이과수 입구로 돌진 했다. 이과수는 과라니어로 큰 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라니 족은 이 일대에 살았던 매우 큰 부족인데, 지금은 많은 수가 살아 남은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그들의 정신세계는 이 곳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파라과이에선 과라니어가 스페인어와 함께 공동국어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서,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첫 번째 역에서 내려 인페리오르 산책로와 수페리오르 산책로를 보고,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동선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또, 인페리오르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으니 시원하게 배도 탈 예정!!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이 Poor Niagara(불쌍한 나이아가라~) 라고 외쳤다는 말에 더 유명해 진 이 곳 이과수 폭포, 아 기대 된다.
카메라는 없지만 우리 눈에, 가슴에 잔뜩 담아 가야지. ^-^ ( 오늘은 은정의 카메라를 이용했습니다)
<입구예요~> 인페리오르 산책로(아랫쪽 산책로)가 시작 되는 곳에 까페테리아가 하나 있었는데, 그 곳 주위를 맴 돌던 너구리가 어찌나 많던지… 사실 너구리는 아니지만 너구리와 닮아서 자꾸만 너구리라고 부르게 된다. 자꾸만 사람들이 먹을 걸 주는 바람에 이 곳을 떠나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제부터라도 단호하게 먹을 걸 주지 않아야 야생으로 돌아갈텐데…
<너굴너굴~~>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 너구리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쁜 새와 나비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입은 빨간 색 티셔츠 때문인지, 내 주변을 자꾸만 맴 도는 나비들. 나비들도 꽃과 비슷한 색을 가진 화려한 색상을 좋아 한다고 한다. 신비스럽게도 우리들이 나비들에게 끌려 가는 것만 같았다. 나비들을 따라 한 발짝 한 반짝 걷다 보니, 낙원 같은 폭포 물줄기가 나오고 우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여러 개의 수 많은 물줄기들이 이곳 저곳에서 흐르는 모습을 보자니, 꼭 신선들이 사는 그런 마을에 온 것 같았다. 왠지 작은 술상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할아버지 두 분이 계실 것만 같은 그런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아직 악마의 목구멍은 보지 않았지만, 이것만 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태어나서 폭포를 처음 본다는 은정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감동을 받았고, 폭포를 많이 본 우리들에게도 물론 감동적이었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풍경에 잠시 말을 ..잃었답니다. >
<팬더의 초딩 가방?? ㅎㅎ 은정에게 빌린거랍니다.>
<물보라에 무지개가 생겼어요~!!>
10분 배 타는 데 110페소라… 비싸기는 하지만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다. 폭포물을 시원하게 맞기 위해 배를 타고 폭포 근처까지 돌진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리 수영복을 입고 왔지만, 우린 사정상 수영복을 입지는 못하고 대신 잘~ 마르는 옷을 입고 왔다. ^^ 방수가 되는 가방에 중요한 소지품을 넣고선 배를 타고 폭포 근처로 간다. 우리를 촬영하는 아저씨(DVD로 만들어 승객에게 판매 할 목적)가 갑자기 비 옷을 입고 완전무장을 하면… 그 순간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늦게 타는 바람에 맨 앞에 앉게 된 우리는 그야말로 홀딱 젖어 버렸다. 물이 조금 튀는 정도가 아니라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후려치는 물줄기에 우린 저항을 할 새 없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젖어 버렸다. 배에도 물이 한 가득 들어왔을 정도다. 뒤에서도 puta del hijo…(심한 욕 )를 남발하며 입에선 다들 욕이 나오지만, 그래도 즐거운지 신났다. 이과수 물줄기에 시원하게 목욕 잘 했다. ^^
<배를 타고 나오는길.... 어찌나 방수 카메라가 아쉽든지.. 이 날을 위해서 한국에서 공수했건만.>
홀딱 젖은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이번엔 수페리오르 산책로(윗쪽 산책로)로 향한다. 조금 전 본 폭포지만, 위에서 내려다 보는 폭포는 또 색달랐다. 바로 발 밑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아찔함에, 또 때 마침 우리의 앞 날을 축복해 주듯 쌍 무지개가 떠서 오늘이 꿈인지 생시인지 안 믿길 정도로 좋았다. 예전에 본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라는 영화 속 장면 같기도 했고… 아무튼 말로 쉽게 표현 안 될 정도로 너무 너무 좋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주장하는 은정이는, 폭포에서 한 번 떨어져 보고 싶다고 한다. 고소 공포증 있는 게 맞니? 난 상상만 해도 무서운데… @.@
<팬더가 웃는다.>
<쌍무지개!!! 날씨 운도 따랐던 오늘.! 행복합니다ㅏ.>
오늘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으로 갈 시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1분 차이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기차 시간을 미리 알아 둘 걸… 기차 한 대로 악마의 목구멍까지 왕복을 하는 탓에 기차 시간을 미리 알아 두면 시간 절약을 할 수 있다.
<이 기차가 계속해서 왕복합니다.>
기차에서 내려 악마의 목구멍까지 걸어 가는 시간은 생각 보다 길었다. 약 10분 정도? 계속 걷기만 한다. 그러다 갑자기 물 소리 으르릉 쾅쾅 들리고, 상상 초월의 물들이 한 곳에 모여 한 번에 떨어진다. 이과수의 뜻 그대로 큰 물이 되어 떨어지는 것이다. 이걸 보고,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그 위용은 짐작할 만 하다.
<악마의 목구멍 보러가는길.. 저 멀리 하얀 구멍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좀 더 가까이~ 여기까지 아직 느낌이 안와요~>
<조금 더...>
<윽................> 거의 270도 정도의 각도로(270도? 토끼야~~이건 오바제???ㅋ) 한 번에 떨어지는 물줄기. 보고 있자니 나도 그 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물보라 때문에 그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위를 아슬 아슬하게 공중 곡예를 하듯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며, 순간 아찔함에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이건 인간이 만들 수도 없고, 인간이 줄 수 없는 감동이다. 오직 자연만이, 우리에게 이러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거다. 진짜 진짜 큰물을 만나고, 큰물에서 논 날. (갑자기 예전 온두라스에서 배드벅스때문에 옷을 삶기 위해 큰불과 큰솥을 주세요~라고 빌었던 기억이 난다.)
<은정 : 혹시나 자기가 죽고 싶을 땐 꼭 여기서 떨어지겠다던....그녀 겁도 없어~!>
<가족/연인/친구....그리고 사진사 <-- 관광지 패키지 죠?? >
<태극기니?>
<토끼도 웃는다.>
<맞은편 브라질 땅이랍니다.>
<돌아가야할 시간.... 조금 더 보려고. 다시는 못올지도 모를 곳이기에 한참을 폭포만 바라보았답니다.> 한 참을 멍하니 악마의 목구멍을 바라 보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을 인지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텔레포트 했다 현실로 돌아 온 기분이랄까? 현실 속에선 오늘 은정이가 부에노스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도 상황을 보고 파라과이로 이동을 해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우선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은정이를 보내고 우린 적당한 주유소를 찾아서 하루를 자고, 내일 파라과이로 가기로 했다. 아르헨티나보다 치안이 안 좋은 곳인데 괜히 낯선 도시를 저녁에 들어가느니, 내일 날 밝을 때 가야겠다.
이제는 우리가 아르헨티나 자동차여행 전문가 같았다. 그냥 조금 불편해도, 잘 때 되면 주유소 뒤쪽 트럭운전사들 자는 곳에서 끼어 자면 되고, 배가 고프면 버너를 꺼내서 적당히 뭘 해 먹으면 되고, 남는 시간엔 차에 시동을 걸어 전기를 쓰며 우리의 여행을 기록하거나 영화를 본다. 그리고 씻을 때가 되면 차에 미리 실어 둔 물으로 세수나 양치질을 하고, 주유소에서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샤워장에서 샤워를 할 수도 있었다. 마음을 조금만 비우면 뭐 하나 불편한 게 없었던 이 시간들이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12월 13일이 되면 더 이상 남미에 없고, 우리 으릉이와도 헤어져야 할 것이 분명 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시간들이 끝나가자,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아르헨티나에서의 마지막 밤. 내 여권에 총 4번이라는 도장이 찍힌 질기고도 질긴 인연, 아르헨티나. 안녕!!
<아르헨티나랑은 곧 헤어지지만 우리는 계속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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